이사 온 공공아파트는 풀 옵션.
생필품인 가전을 별도로 구입하지 않아서 좋다.
바로 길 건너 광장에서 매주 2번씩 시장이 열리는 것도.
광장시장은 한국시골 5일장 모습과 흡사하다. 농부들이 임시로 설치한 작은 가판대에는 인근에서 생산된 농축산품들이 소박하게 진열된다.
싱싱한 온갖 채소, 과일, 야생화, 그리고 농가 전통방식으로 가공한 치즈, 소시지, 돼지고기, 거위만큼이나 큰 튀긴 닭까지 다양하다.
프랑스식 이색적인 먹거리를 보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모처럼 나들이 나서는 시골아낙네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간다. 먹거리를 사러 간다기보다는, 처음 보는 먹거리 눈요기하는 구경목적이다.
어매 손잡고 시장 가던,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였을까?
아파트로 이사 온 후, 한 번도 와 보지 않는 욜랑이다.
그녀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만조 밀물처럼 밀려올 때도.
한 번쯤 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저녁부터, 호텔에서 지내라!”라며, 단칼로 퇴거시킨 미안함에서 일까?
이사 온 지가 3달이 넘었다. 전화할 때마다 그녀에게서 듣고 싶은 말,
“꼭 한번 가봐야 되는데, 시간이 통 나지 않네. 짬 내서, 곧 갈게.”
이런 기다림과 달리, 전화교환원처럼 친절하게만 응대하는 그녀.
중간 어디쯤 이미 끊어져버린 인연의 실, 그 끝을 미련하게 잡고 있는 걸까?
서운한 앙금이 생긴 그 순간부터, 관계 원상복구는 그리 쉽지 않나 보다.
특히나 전혀 다른 문화권 동서양사람 사이에는.
뒤엉킨 실타래처럼, 어디서부터 풀어할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갑자기 등 떠밀려서 퇴거한 날, 생긴 상처가 가끔 쑤시기까지.
그때마다 원망하는 썰물에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안부 전화를 하는데도.
한 번도, 이사 온 아파트 근황에 대해 물어보지 않는 그녀.
“어떤 곳에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은 걸까?”
유통기간 지난 통조림처럼 버려진 느낌도, 가끔 스멀거리며 올라왔다.
그녀의 동거남 필립이 카페를 떠나지 않고, 뭉그적거릴 때는 덜 서운했다.
지금은 그도 떠났고, 그녀 언니도 요양원으로 들어갔고, 카페도 매매됐다.
전부 정리된 뒤인데도. 오매불망 기다리는 나에게,
“네가 이사한 아파트에 가보고 싶구나. 뭐 필요한 것은 없냐?”
우리 어매라면 단연코 했을 말인데도, 함구하는 그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나,
“이번 일요일에 다른 약속 없으면, 아파트로 점심 먹으러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약속 없어. 알았어. 점심 먹으러 갈게.”
오늘은 나들이 구경목적이 아닌, 내일 점심 메뉴 식자재를 구입하러 광장시장에 간다. 평소처럼 가장 먼저 들린 곳은 생선가게다.
다행히, 가판대 위에 수북이 쌓인 싱싱한 참돔!
전부 사고 싶을 정도로 씨알이 굵었다. 한눈에 봐도 30cm는 족히 되는 데다가, 아주 통통했다. 가격도 1마리에 15프랑! 프랑스에서는 손질되지 않은 생선은 아주 싸다. 큰 참돔만 골라서 10마리를 산 뒤, 기분 좋게 귀가했다.
깨끗이 손질한 뒤 1마리씩, 은박지로 개별 포장하여 냉동실에 넣었다.
일요일 오전 11시.
냉동실에 보관하지 않고, 냉장 칸에 넣어둔 참돔 2 마리를 꺼냈다.
오븐용 대형 유리그릇 바닥에 깐 버터가 끓을 때, 참돔 2 마리를 넣고 50분간 익히는 간단한 레시피.
참돔 익는 고소한 생선 냄새가 아파트에 진동할 즈음 도착한 욜랑,
“음~냄새 정말 좋구나! 도대체 어떤 요리인데?”
하얀 둥근 식탁에서 먼저 화이트와인을 마시고 있던 그녀, 하얀 접시 위의 큰 참돔 모습에 감동했다. 칼집 낸 빗살무늬 틈새로, 보글대며 올라오는 참돔기름을 보며 연발한 감탄사,
“얼라라아! 난생처음 보는 요리모습이네! 내 딸은 정말 굉장한 요리사구나!”
미식가인 그녀다. 마치 아이처럼 지르는 탄성,
“얼랄라아~세상에! 너무 맛있어! 이런 생선 맛은 난생처음이야, 내 딸아!” 식사 중에도 내 얼굴을 비벼대며 계속된 감동의 몸짓, 예전 그녀처럼.
미리 사다둔 고급 디저트를 먹으며, 생일 같다고 철부지처럼 좋아하는 그녀.
그 모습에 나도 비로소 평안해졌다. 행복은 바이러스처럼 번지나 보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어느새 식곤증으로 잠든 그녀.
따뜻한 물을 욕조에 가득 채운 뒤, 그녀를 흔들어 깨우며,
“욕조에 들어가서, 따뜻한 물속에 몸을 푹 담그세요. 좀 있다가, 요술 장갑으로 빡빡 밀어줄게요.”
욜랑은 때밀이 수건으로 얼굴 각질을 제거한 날부터, 요술장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모양에 비해 마술적인 효과를 준다고 프랑스에서는 요술장갑이 지만, 한국에서는 이태리타월로 불린다.
한국식 목욕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그녀,
“내 몸엔 각질이라곤 전혀 없어. 요술장갑으로 밀지 않아도 돼. 그냥 따뜻한 물속에서 잠깐 쉴게.”
못 들은 체하고, 그냥 말없이 때를 밀었다. 평생 동안 그녀의 몸에 빌붙어 살던 오래된 각질들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힘껏 문지르는 나의 손끝에서.
끝없이 계속 밀려 나오는 때를 보고 당황한 그녀,
“얼랄라아! 믿을 수가 없어! 얼랄라아! 얼랄라아...!”
어매생전에 살갑게 못했던 막내딸의 회한을 보속 한 오늘.
어매에게 등 한번 밀어주지 못했던 그 무정함, 프랑스 표류하는 동안에 딸처럼 보살펴준 욜랑에게 대신 보속하는 날이다.
현재, 경제적 상황은 논문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불확실한 내일, 갑자기 닥칠 이별대비해서 앞당겨 숙제하는 중이다.
예전 어매가 못 누렸던 기쁨, 욜랑이 만끽하며 소녀처럼 좋아하고 있다.
“어매생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소확행’을 함께 누리고 싶지만...”
이런 회한을 또다시 만들고 싶지 않다는, 그 간절함이 발로였다.
그녀를 애기처럼 깨끗이 씻긴 후, 오일 전신 마사지까지 해준 이유는.
미리 이별선물을 준 것이다.
이런 숙고로 준비한 줄 알 리가 없는 ‘소확행’ 선물을 받은 그녀,
“얼랄라아~! 그 어떤 생일보다, 오늘이 가장 행복한 생일이야. 생전처음 먹어본 생선요리! 중국 황후처럼 목욕도 하고. 오일 전신 마사지까지!”
일상 안에서 소리 없이 출발한 이별여행, 첫 발걸음은 성공한 느낌이다.
아이처럼 기뻐하는 그녀 덕분에, 덩달아 나도 흡족한 오늘.
욜랑은 프랑스 엄마처럼, 나를 사랑했을까?
아니면 자녀 없는 그녀의 버킷리스트 수혜자가, 나였을까?
그녀가 가장 우선시했던 것은 최상의 식자재, 최고의 먹거리 구매였다.
프랑스인이 가장 우선시하는 ‘소확행’은 일상 속에서 최고의 요리를 만끽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그녀는 최선을 다해 나를 보살폈다.
카페에서 사는 동안, 맛본 각종 다양한 요리 이름은 대부분 기억하지 못한다. 논문으로 늘 긴장된 일상으로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고, 맛있다는 과한 리엑션을 해야 하는 것도 상당히 고역이었다.
지금 기억되는 이색 요리들은 송아지 뇌를 필두로 말고기, 멧돼지, 양고기, 개구리, 달팽이, 푸아그라.
유독 푸아그라는 좋아했지만, 계속되지 않았다.
성탄만찬 메뉴로 나온 푸아그라를 먹지 않고, 나를 주던 절친 이자벨.
저녁만찬 끝난 뒤에 함께 차를 마시다가,
“왜 푸아그라 먹지 않고, 나를 줬어?”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녀가 들려준 푸아그라 제조과정 참상이다.
“강제로 거위 입을 벌린 후, 쑤셔 넣은 곡식 때문에 비대해진 간으로 만든 음식이 푸아그라야! 속성으로 거위 간을 키우는 잔인한 방법이지. TV에서 이 장면을 본 이후부터, 더 이상 푸아그라를 먹을 수가 없어.”
거위의 고통을 들은 그날부터, 나도 푸아그라가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을 줄행랑치게 만든 누드개구리 요리도.
반면에 변치 않고 입맛 당기는 간식도 있다.
샴페인 아이스크림, 체리브랜디 초콜릿, 농부가 아침에 갓 따온 검은빛 도는 잘 익은 체리, 식사대용으로 먹어대는 바람에 입술이 검붉어질 정도였다.
참돔구이식사에 이어 한국식 목욕 마무리 후, 예전처럼 회복된 우리.
그녀가 점점 더 낯설어지던 그즈음, 내렸던 결단 덕분이다.
이대로 영영 이별할 수는 없다는 오기로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뻣뻣이 항거하는 내적 감성을 억누르며, 그녀를 아파트로 초대한 날.
이렇게 한 발짝 뗀 것만으로도, 마술처럼 상황은 따뜻한 온기로 바뀌었다.
그 덕분에, 내 의식의 오류도 발견했다. 어매의 자리에 그녀를 앉혀놓았던 것이다. 그녀는 프랑스 표류기간 동안, 소박한 주거와 양질의 일용할 양식을 제공한 생명의 은인이다. 그녀와 소원해지게 만든 원인은 ‘어매와 은인’을 혼돈한 나 때문이었다. 그녀가 은인이라는 사실을 재인식하는 그 순간부터, 수호천사처럼 따뜻하게 빛났다.
기댈 대상이 절실했던 이방인 철부지와 자녀 없는 프랑스 여인, 하느님 뜻대로 인연의 실로 묶어주었을까?
한 지붕아래서 가족처럼 함께 지내는 동안, 내가 점점 과도하게 그녀에게 의지했던 것이다. 의지한다는 의미는, 기대한다는 동의어다. 사람에게 의지하거나 기대한 결과는 대부분 상처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망각했을까?
아니면 예외도 존재한다는 암묵적 항거였을까?
그녀와 나, 우리의 ‘소확행’ 순번은 달랐다. 그 다름의 당연함을 의식하지 못한 데다가, 의존적인 내 의식이 문제였던 것 같다.
내가 바란 모정은 무리였다. 그녀가 무경험자라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이민 2세인 그녀는 3살에 엄마를 잃었고, 자녀도 없는 모정 무경험자였다.
처음에는 조심했지만, 점점 의지하고 기대하고 바라고 결국 상처로 귀결되는, 그 혼돈의 인간관계 트랙 안으로 들어갔던 나.
영혼 깊은 곳에서 기대고 싶어 하는 웅크린 녀석을 쫓아내고 해방된 날.
한국식으로 욜랑을 목욕시킨 날, 새로운 인식의 눈이 열렸다.
참돔구이 이별만찬 후, 그녀와 헤어지는 아파트 정문 앞.
프랑스식 포옹, 양볼 입맞춤, 마무리 인사말로,
“처음 만난 날처럼,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사랑해요. 언제나 온 마음으로 사랑해요, 당신 딸...”
둘 다 동시에 누린 ‘소확행’을 확실하게 만끽한 날이다.
그녀를 배웅한 뒤, 테라스에서 프랑스식 진한 커피를 마셨다.
아주 산뜻한 마음으로,
“프랑스 엄마가 아니, 생환의 은인으로 평생 기억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