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낯섦 속에 새롭게 변화된 나를 만나고 오는 것
6월 연휴 기간에 1박 2일로 강원도 양양 동호해변에 다녀왔다. 여행의 목적은 장모님과 장모님의 동생 분인 이모님, 그리고 가족과 함께 바다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 장모님이 처제가 안겨준 반려견을 데리고 있는 터라 반려견이 동반되는 숙소를 예약했다. 오랜만에 강원도 바닷가 여행이라 마음이 설레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해변으로 걸어갔다. 숙소에서 1분만 걸어가면 해변이었다. 도착해 짐을 푼 시간이 오후 3시 정도라서 제법 여유가 있었다. 오랜만에 1년 전에 썼던 파라솔과 그늘막 텐트, 돗자리, 의자, 테이블을 가져갔다. 멋지게 세팅했다. 가까워서 힘도 들지 않았다. 바람도 선선하고 햇볕도 따갑지 않아서 좋았다. 바닷가에서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있는 시간이 얼마 만인지. 이때까지만 해도 완벽했다.
마침,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책을 가져갔다.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김영하 작가가 소설을 쓰기 위해 중국에 갔다가 비자가 없어서 추방된 이야기가 펼쳐졌다. 아 글은 이렇게 써야 하는구나. 읽는 내내 지루하지도 않고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중국에서 추방당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작가는 계획대로 완벽하게 이뤄진 여행담보다는 실패를 다룬 이야기를 담는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말한다. 여행기의 플롯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먼 곳으로 여행을 가지만 여러 가지 사건을 겪고 성취하려고 한 목적과는 다른 어떤 것을 깨닫고 처음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김영하 작가는 말한다. 이 글을 읽는 동안 나는 새파란 바닷물과 새하얀 파도 속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책을 보고 쉬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내게도 실패가 찾아올까? 피식 웃었다.
바닷물에도 들어갔다가 사진도 찍기도 하고 잠시 잠도자면서 한참을 놀다 보니 어느덧 저녁이 다가왔다. 짐을 챙기고 간단히 씻은 후 저녁을 먹으러 가야 했다. 평소대로 하면 자주 가던 '삼팔횟집'을 갔을 것이다. 우리에겐 한 번도 같이 여행을 해보지 못한 반려견이 있었다. 고민했다. 포장해야 하나 식당에 가서 먹어야 하나. 포장을 하자니 반찬이 적게 올 것 같고 숙소에서 상을 펼치기도 어려운 구조였다. 가까운 횟집에 전화를 해보니, 야외에서는 먹을 수 있다고 했다. 횟집으로 가서 먹기로 했다. 사실 펜션에서 반려견 동반 가능 횟집을 칠판에 적어 놓았었다. 칠판에 적혀 있는 횟집들은 모두 차로 이동해야 했다. 물론 픽업도 가능하다고 했지만 귀찮았다. 그래서 숙소에서 500미터 떨어진 횟집으로 찾아갔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전화 통화상으로는 밖에서 식사할 수 있다고 했으나, 막상 가보니 먹을 수 없는 구조였다.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사정을 말하니 잠깐 기다려 보라고 말했다. 잠시 후 머리가 하얀 진짜 주인아주머니가 우리를 부르더니 2층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절대로 반려견을 바닥에 놓지 말라고 당부했다. 우린 기쁜 마음에 기대하고 상에 앉았다. 하지만 기쁜 마음도 순간이었다. 1층에서 종업원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세팅하면서 청소하기 힘드니 화장실 이용하지 말아라, 맥주 컵은 없으니 종이컵으로 먹어라 툴툴댔다. 1층에서 음식을 갖고 오면 손님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하고, 힘들다고 말하면서 씩씩대기까지 했다. 여행을 왔으니 기분 좋게 먹고 갈라고 웃으면서 넘겼다. 블로그 리뷰에 좋은 평이 많아서 기대했었는데 막상 먹어보니 만족스럽지 못했다.
곁들이 찬(스키다시)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의 밑반찬만 가득한 음식을 먹고 나서, 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일반 횟집처럼 풍성하게 가져온 것이 아니고 적어 보이는 양과 맛없어 보이는 접시에 회를 가져왔다. 양은 적어 보여도 막상 먹어보면 배가 부를 것이라고 말하면서 기분 좋게 먹으려 했다. 그럭저럭 회도 거의 다 먹었고 물도 모자라 휴대폰으로 횟집에 전화했다. '2층입니다. 매운탕과 밥 4개 그리고 물을 갔다 주세요.'라고 말했다. 씩씩거리던 아주머니가 이번에도 매운탕을 들고 올라왔다. 문을 열어달라고 했고, 역시나 허리도 아프고 힘들다고 씩씩거렸다. 그 모습을 본 아내가 상을 손으로 내려치면서 폭발했다. 옆에서 장모님도 쓴소리를 하기 시작하셨다. '손님에게 이렇게 함부로 대해도 되느냐', '마음이 불편해서 식사를 편하게 할 수 없다', '돈을 주고 먹는데 왜 눈치를 보면서 먹어야 하느냐', 언성을 높였다. 갑자기 분위기가 험해져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장모님도 애견 때문에 같이 여행온 우리 가족에게 미안해하셨는데, 식당에서 푸대접을 받으니 감정이 상했던 거다. 매운탕을 먹을 수 없어서 1층으로 내려갔다.
계산하면서 상황을 설명했고, 주인집 아들로 보이는 사람이 연실 죄송하다고 했다. 씩씩대며 일했던 아주머니는 지적장애 3급이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 어찌 됐든 여행을 왔고 게다가 장모님과 이모님 까지 모시고 왔는데, 기분이 안 좋아졌으니 여행을 망친 느낌이었다. 매운탕값은 제외하고 계산이 이뤄졌다. 아내는 계속 내게 물어봤다. 자신이 화낸 게 잘못한 거냐고. 참아야 했던 거냐고. 자기 행동이 틀리지 않았음을 내게 듣고 싶어 했다.
낮에 김영하 작가의 책 <여행의 이유>에서 중국에서 추방된 이야기가 생각났다. 비행기를 타고 중국으로 소설을 쓰러 갔다가 그날 오후에 집으로 되돌아온 김영하 작가. 기분 좋은 저녁을 꿈꾸고 횟집에 왔지만, 푸대접만 받다가 다 먹지도 못하고 기분만 나빠져서 식당을 나온 우리. 역시 여행은 정해지지 않은 일들이 생겨나고 그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행동한 것을 다시 생각해 보고 다음에는 어떤 행동을 해야지 결심해 보는 그런 깨달음을 주는 것인가? 생각해 본다. 좀 전에 화를 내지 말고 꾹꾹 참으며 마지막까지 기분이 안 좋은데 좋은 척하고 잘 마무리했다면 어땠을까? 상상도 해보고. 여행을 간 우리는 식당을 나오며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맥주를 사서 해변가에 앉아 맛있게 먹으려 했지만, 둘째가 바닷가 데크에 앉다가 손에 가시가 박히는 바람에 해변에서의 아름다움을 꿈꾸던 시간이 사라졌다.
초등학교 4학년 둘째는 처음부터 포장해서 숙소에서 먹자고 했었다. 아내와 나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횟집에서 나와 바닷가에서 컵라면을 먹자고 했을 때도 둘째는 숙소에 가서 먹자고 했고 아내와 나는 듣질 않았다. 가시는 잘 빠지질 않았다. 둘째는 많이 울었고 결국 라면도 먹지 못하고 잠들었다. 여행이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겪게 된다.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겪을 때 반응하는 나를 만나게 된다. 어떻게 대처하는지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유연해진다. 반려견을 데리고 여행할 때는 반려견 동반 가능한 식당을 미리 찾아서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만 하지말고 아이들 말도 좀 듣자. 장모님과 아내 마음도 헤아리자.
여행은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고 새롭게 변화된 나로 다시 되돌아오는 게 진짜 여행이다. 6월의 강원도 아름다운 해변과 횟집에서의 안 좋은 에피소드와 손에 가시가 박혀 울다가 먹고 싶어 한 컵라면도 먹지 못하고 잠들어 버린 둘째의 모습은 마음 한켠에 깊이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