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를 예방하라
대형인재가 발생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안타깝고,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입니다. 다시 한번 억울하게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들을 추모합니다.
그런데,. 대형인재를 보도하는 뉴스를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그렇게 예방하기가 힘들었나? 조금만 조심하면 피할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드시지 않나요?
대형사고의 원인은 구조적이고 복잡한 문제들이 저변에 깔려있긴 합니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 현장을 살펴보면 항상 사람들의 인지 오류가 개입되어 있습니다. 잘못 이해했거나, 잘못 판단했거나, 잘못 실행하도록 유도되었거나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형인재를 줄이기 위해서는 시설이나 운영방법을 바꾸는 것과 함께, 작업자의 심리를 이해하여 그들이 안전한 경험을 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고쳐야 할 몇 가지 왜곡된 관점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1. 대부분의 사고 원인으로 알려진 "부주의"는 사실 진짜 원인이 아니다
수 십 년 간의 대한민국 산업현장에서 잘못 사용되었던 용어 중 하나가 "부주의"입니다. "부주의"는 거의 예외 없이 모든 대형사고의 원인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하루에 8시간 또는 10시간 이상, 계속 높은 주의력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부주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보통 사람이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인지적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특정한 시점에, 주의력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에, 주의하도록 설계할 수는 없었나? 그 질문을 해야 합니다. 주의력이 필요한 순간에 작업자는 왜 집중하지 못했나? 그 원인이 무엇인가? 즉, "부주의"는 원인이 아니라 나타난 결과로 보고 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안전 불감증"입니다. 이런 병명은 심리학에도, 의학에도 없는 말입니다. 굳이 설명하자면 위험을 감지하는 (perception) 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과연 안전불감증이 사고의 원인으로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것이 적절할까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게 위험이 닥치면 대피하려고 반응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안전불감증을 가지고 있다는 걸까요?
저는 이 용어가 사고의 원인이 되는 수많은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간과하게 만드는 왜곡 효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즉, 대형사고의 원인을 "위험을 인식하는 태도나 능력이 부족한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고, 이런 사람을 없애면 사고가 줄어들 거라는 착시현상을 일으켰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형사고가 줄어들었나요?
2. 부주의의 잠재적 원인을 찾아라
원치 않는 부주의 상태로 빠지게 되는 원인을 연구한 결과가 있습니다. Gorden Dupont (1993)이 지적한 내용입니다.
작업장 내 소통부족, 과다한 동시작업, 시간+장비+기술+지식+경험이 부족한 환경, 스트레스, 잘 모르는 체 자만한 태도, 망가진 팀워크, 위험성 의식의 결여, 위험도에 대한 지식의 결여, 피로도, 불확실한 자기표현, 자기만의 작업 기준이 잠재적 위험 요인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잠재적 위험 상황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의 숙련도에 의지해서 사고를 막고 버티는 경우, 새로운 일로 작업 내용이 혼재된 경우, 신입인력이 많이 투여된 경우, 공정이 바뀐 지 얼마 안 되는 경우, 위험한 작업과의 거리가 가까운 경우, 너무 오랜 시간 위험작업에 노출된 경우, 위험에 대한 현장 판단을 경영진이 빨리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 등입니다.
이런 잠재적 위험 (Resident Risk) 요인과 상황을 하나씩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부주의 상태가 발생해 사고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3. 대형인재는 확률적으로 발생하기 어렵다?
대형인재를 예방하기 위해서 특별한 설계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일상의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설계만으로도 대형인재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형인재는 여러 개의 작은 사고와 오류가 체인처럼 연결되어야만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Chain action (Reason, 1990;1997)이라고 부릅니다. 별칭 '스위스 치즈모델'을 사용해서 이 과정을 설명합니다.
조직과 시스템의 문제, 작업 환경적 문제, 사람의 잘못된 개입, 이를 막는 장치의 실패가 동시에 또는 순차적으로 구멍이 났을 때만 대형사고가 발생합니다.
https://www.semanticscholar.org/paper/EUROCONTROL-Systemic-Occurrence-Analysis
위 그림과 같이 사람의 실수를 포함한 오류가 3개 내지 5개 이상 연결해서 발생했을 경우에만 대형인재가 발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 3개 내지 5개 이상의 체인 중, 어느 하나라도 끊어지면 대형인재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행히도 대형인재는 자주 일어나지 않습니다.
4. UX 디자이너가 왜?
UX 디자인은 서비스와 소비자 제품에 적용되면서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전한 경험 없이 심리적으로 만족할만한 경험을 제공할 수는 없습니다. UX디자이너가 안전한 경험을 설계하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그래서 UX디자이너는 서비스, 제품, 더 나아가 시스템과 조직 내에서 안전한 경험을 하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다만 설계 범위가 너무 넓어지면, 한 사람이 모든 분야를 커버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연히 협업이 필요하겠지요. 그래서 타 전문분야와 소통할 수 있도록 다양한 개념과 용어를 학습해야 합니다.
결국 UX 디자이너는 융합 기술을 적용하는 사람입니다. 안전에 대한 개념과 공학 심리의 개념을 공부해야 합니다. 숙련된 UX 디자이너가 사회 모든 분야에서 활동하는 때가 오면 좋겠습니다.
https://www.istockphoto.com/kr/%EB%B2%A1%ED%84%B0/%EC%9B%B9-%EB%B0%8F-ui-ux
5. 무시무시한 잠재적 위험: AI
우리는 아직 AI가 어떤 위험요인을 가져올지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아직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위험이라는 것입니다.
UX디자이너는 AI가 만들 일상의 위험과 사회적 위험을 고려한 안전한 AI경험을 설계할 수 있는 소양을 쌓아야 합니다.
UX디자이너는 사용자의 Needs에 따라 진화합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AI 시대에도 UX 디자이너라는 직종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https://sky.kipa.re.kr/%24/10130/contents/7041891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그간 30화에 걸쳐 UX 디자이너가 공학 심리학을 이용하여 어떤 융합적 접근을 할 수 있는지, 사용자에게 어떻게 만족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AI 시대를 코 앞에 두고 있습니다. AI 기술의 진화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그리고 AI가 우리의 삶에 들어오는 속도도 너무 빠릅니다.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기술 사회, 아니 AI 주도 사회를 강제적으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합니다. 인간공학자로서, 인간과 공학적 산출물의 조화를 추구하며 수 십 년을 연구했지만, AI와 어떤 조화를 이뤄내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다음은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여정을 떠나게 될 것 같습니다.
그간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집니다. 조만간 만날 것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