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에세이
나는 시간 늦추는 법을 안다
이 방법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들은
기계적 시간이 진짜 시간인 줄 알고 산다
진짜로 시간이라는 게 있나?
시간의 과학적 정의는
"엔트로피의 증가"라고 한다
이해되지 않는다
너무 추상적이다
결국 시간이라고 정해진 것은 없다
결국 내가 느끼는 시간이 전부다
그러다 보니
너무 짧게도
너무 길게도 느껴지는 것이
시간이다
그 시간을
천천히 가게 하면 된다
시간이 빨리 갈 때가 있다
세상 할 일 많으면
빨리 간다
너무 즐거워도
빨리 간다
시간을 늦추겠다고
할 일을 없애거나
힘든 일만 할 수는 없다
시간이 천천히 가는 때를 찾아야 한다
그럴 때가 있다
무언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면
시간은 멈춘 듯 가지 않는다
학교 다닐 때 지루한 수업은
5분이 50분 같다
말년 병장의 한 달은 일 년 같다
그 시간은 정말 천천히 간다
왜일까?
"기다림"
그렇다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리면
시간은 천천히 간다
시간을 천천히 가게 하는 비밀은
기다리는 데 있다
단지 지루함이 문제다
지루함을 줄여야 한다
무엇으로 지루함을 줄일까?
기대감이다
기대하며 기다리면 지루하지 않다
놀이공원의 긴 줄은
아찔한 경험에 대한 기대로 지루하지 않고
K-pop 스타를 만나기 위해
텐트 치고 밤을 새우는 열혈 팬은 설레기만 한다
기대를 안고 기다리는 거다
바로 이게 시간을 늦추는 처방이다
보고 싶은 이를 기다리고
좋은 일이 성취되기를 손 모아 기다린다
그때
시간은
천천히 간다
간절히 기다리고
기대감에 설레면
시간은 천천히 간다
시간의 길이라는 것은 물리학적으로는 엔트로피의 증가 (모든 물질은 시간이 흐르면 무질서한 형태로 바뀌어간다. 망가지고, 부패하고, 어지러워진다)라는 어려운 말로 설명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쓰는 기계적 시간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참고하여,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추상의 개념이라는 뜻이다. 시간은 사회의 약속일 뿐이고, 시간의 길이라는 것은 그저 생각 속에 있을 뿐이다.
얼마 전 은퇴를 맞이한 나는 30년이라는 시간의 덩어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 크기는 결코 작지 않은데도, 대하드라마도 쓸 법한 시간인데도, 그럴듯한 서사가 없다. 그저 몇 장면이 떠오를 뿐이다.
그러니까 시간이 금방 지나간 것은, 지나간 시간이 짧아서가 아니라 기억을 못 하는 거다. 아마도, 사건이나 장면의 흐름을 좀 더 잘 기억할 수 있다면, 시간은 길게 느껴질 것이다. 충격적인 장면과 사건을 경험하면, 그때의 장면 하나하나, 사건 과정 하나하나가 모두 기억되고, 결코 짧지 않은 시간으로 느껴진다.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는, 기억이 될만한 하루를, 일주일을 만들어야 한다. 기억을 위해 매일 사건 사고를 겪을 수는 없다. 그 대신, 일상의 기억에 다른 색깔을 입히는 작업을 하면 된다. 만나지 않던 친구를 만나보고, 가보지 않았던 장소에 가보고, 읽지 않았던 책을 사보고, 입지 않았던 옷을 입어보고, 먹어보지 않았던 음식을 먹고.. 우리의 뇌는 색다른 경험을 잘 기억한다. 그것이 시간을 길게 만든다.
그리고, 시간의 속도를 내가 조정할 수도 있다. 하루가 길어지려면, 무언가를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길고 지루하다. 거기에서 지루한 것만 빼면, 우리는 시간을 길게 사용할 수 있다. 나는 오늘 무엇을 기다리고 있나? 저녁때 친구 만날 순간을 기대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일만 하며 보내는 하루보다 길지만, 덜 지루할 것이다. 로또 티켓이 주말을 기다리게 하지만, 행복한 기대감을 가진 일주일이 될 것이다. 지루함을 걷어낸 기다림이다.
기다리는 시간을 의미 있고 흥미 있는 무엇으로 바꿀 수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너무 바쁘거나, 너무 재미있으면 안 된다. 시간이 빨라져 버린다. 적당한 기대감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담담히 기대하며 기다리는 하루하루의 삶".. 이것이 내가 시간을 천천히 가게 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