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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봄 Dec 31. 2022

2022년과 헤어지는 연습 중

저장된 실패를 기대로 바꿔 깔끔하게 미련없이 보내자.

더 이상 넘길 달력이 없으니 2022년과도 헤어져야 한다.

해가 거듭될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익숙함이 자연스러울수록 헤어짐은 연인을 못잊어 질척거리는 것처럼 어렵다. 

매년 12월은 헤어지는 연습과 동시에 환대를 장착해야 하는 달이다.

2022년의 나와 주변인에게 전심으로 달려온 일들을 칭찬해야 하고 미안한 일은 온맘다해 사과해야 한다.

일상을 거의 공유하는 홈스쿨러에게는 더욱더 진솔함으로 다가가야 한다. 이런 의식은 5년째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헤어짐에 대해서는 언제나 잘 배웅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준비를 한다. 그것이 마감일을 맞추느라 턱밑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의 에디터가 머리채를 쥐어뜯는 것처럼, 동네 고양이 발이라도 빌리고 싶을 만큼 정신에 여유가 없어진다.      






일단을 상큼하고 깔끔하게 그러나 미련없이 후련하게 이별을 해야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올해의 감사한 일들을 먼저 나누고 기록해서 트리 비슷한 불이 나오는 나무에 달아 놓기로 한다.

우리집 세대주가 먼저 읊는다.

‘모두가 건강한 것에 감사한다’

‘제주도 한달살이를 무사히 마친 것에 감사한다’

‘장모님 버킷리스트인 한라산 등반을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한다’

‘가족송 「다행이야」가 마음에 흡족하게 탄생하여 감사한다’

나머지 가족들은 컨닝페이퍼를 보는 마냥 감사목록이 슬쩍 추가된다. 

다른 이의 감사를 들으니 고생한 2022년을 더 잘 보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음은 내 차례다.

‘가족 모두가 건강해서 감사하다’

‘제주도 한달살이 가운데 많은 이들을 만나고 자연을 누릴 수 있어 감사하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어 감사하다’

‘나를 「블랜딩」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 감사하다’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보육원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막막했던 가족송 「다행이야」가 멋지게 등장해서 감사하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는데 마음에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하다’

봄의 따가움과 여름의 숨막힘, 가을의 공허함과 겨울의 추움이 느껴져서인지 여기까지 읽는데 갑자기 울컥한다. 

2022년아! 발버둥치느라 정말 수고했고 애썼다.

2호의 감사목록이 궁금하다.

‘검정고시 패스해서 감사하다’

‘제주도 한달살이 재밌고 즐겁게해서 감사하다’

2호는 혼자 시험준비하느라 정말 고생이 많았다. 물개박수를 쳐 준다.

3호는 캐릭터답게 ‘유튜브프리미엄 결제해서 감사하다, 수영부 그만 둘 수 있어서 감사하다, 수영대회에서 은메달 받아서 감사하다’고 했다. 

아이들마다 뜨겁게 강렬하게 2022년을 살아내느라 고생했구나 싶었다.

1호의 차례다. 사춘기의 짧고도 강렬했던 터널을 막 빠져나오고 있는 현석이라 기대가 되었다.

‘신앙인으로 태어나는 입교를 해서 감사하다’

‘제주도 한달살이를 해서 감사하다’

‘가족송이 만들어져서 감사하다’

기대와 달리는 건조한 감사목록이라 당황스러움을 감추느라 시선을 돌렸다.     

2022년과의 추억을 적당한 당분과 유분가득한 밀가루로 즐기고 다독이며 잘했다고 어색한 인사를 했다. 








그 밤 모든 가족이 잠든 후, 미련이 남아서였을까 나무 주위를 서성이다 반짝이는 나무 불빛사이로 현석이가 읽지 않은 감사목록이 눈에 띄었다.     

「드론 1종 필기시험에 떨어져서 감사하다」     

15살, 실패를 감사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석이는 어느덧 너무 훌쩍 자라있었다. 

동기부여강사이자 MKYU대학 학과장인 김미경씨는 그랬다. ‘뭔가를 이루지 못한 것 같아 본인이 작아지는 것 같은 마음이 든다면 그건 저장된 실패입니다. 그 실패들이 쌓이고 쌓여서 나중에 다른 곳에서 분명 쓰임 받을 겁니다.’     

1호가 성장하는 보폭에 맞춰 나 또한 내면이 단단하게 성장하고 싶다. 

나의 감사목록카드에 마지막 감사를 적었다.

『어떤 순간에도 감사를 잊지 않은 아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2년에 저장된 실패들의 부메랑을 던지다 보면 실패라고 생각한 것들이 적당한 곳에 아주 위대하게 쓰임 받을 준비를 한 채 돌아 올 것을 기대한다.     

아프고 슬프고 찌릿한 일들은 언젠가 더 성장한 모습으로 돌아올 것을 기대하며 오직 감사한 일들만 바라보고 2022년을 기꺼이 보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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