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하는 마음에 대하여
“월요일에 스케일링을 받았는데, 아래 맨 끝 어금니 쪽 금 인레이가 떨어졌어요. 혹시 스케일링 때문에 떨어지기도 하나요? 공교롭게도 치료 직후에 이러니, 저희로서는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네요.”
환자의 아내로부터 연락이 왔다.
토요일 아침, 본격적인 진료를 시작하기도 전에 힘이 쭉 빠졌다. 스케일링을 받은 지 벌써 나흘이나 지났는데 공교롭다니. 검진 당시 환자의 구강 상태는 여러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치과에 근무하는 지인이 있으니 알아서 하겠다며 스케일링만 받고 귀가했다. 충치가 진행 중인 치아에는 보철물이 제대로 붙어 있기 어렵다. 비전문가로서는 당연히 모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왜 인과관계는 묻지 않고 비난의 화살부터 쏘는 것일까. 머리로는 이해하려 애써도 마음 한구석에는 억울함이 층층이 쌓였다.
물론 아주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많은 기만과 배신이 가득한 세상이면, 일단 경계하고 의심부터 하게 되었을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는 방어기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심을 다하는 이들조차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받으며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못내 씁쓸하고 서글프다.
그렇게 감정을 추스르다 문득 거울을 보듯 나 자신을 보았다. "누나는 필터가 너무 촘촘해"라던 남동생의 말처럼, 나 또한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 편이다. 누군가에게 경계를 허물고 신뢰하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낯을 가린다는 말로 예쁘게 포장해 왔지만, 사실 상대방 입장에서는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불쾌한 경계심을 똑같이 느꼈을지도 모른다.
오해와 의심을 받으면 상대 역시 방어 태세를 갖추게 된다. 결국 서로를 향해 세운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누구도 진심에 닿지 못하는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에게나 상대에게나 좋을 리 없는 이 소모적인 굴레를 나는 얼마나 반복하며 살아왔을까. 이런 게 역지사지일까.
사람을 보는 안목을 기르는 일은 참 어렵다. 보이지 않는 사람의 중심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을 갖는다는 것. 오늘 아침의 소란은 나에게 그 어려운 숙제를 다시금 던져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