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진보의 결과에 직면하면서, 동시에 그 진보가 사회의 근간을 무너뜨릴 위협도 안고 있다. 더 나은, 더 깨어있는 인간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갈망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지만, 이 이상을 실현하는 것은 많은 도전에 부딪힌다.
광기는 여러 면에서 인류의 끊임없는 진보 추구의 부산물이다. 사회가 점점 더 복잡해짐에 따라, 인간이 직면하는 정신적, 윤리적 딜레마도 깊어진다. 이론적으로, 인류는 설계와 실행 면에서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변덕스러워, 이러한 시스템은 종종 비현실적이거나 심지어 위험해지기까지 한다. 이상이 인간 행동의 현실과 충돌하면서, 통제할 수 없는 예기치 않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최근 월마트가 셀프 체크아웃 기기의 확대 전략을 철회하고, 대신 절도를 방지하기 위해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하기로 한 결정을 생각해 보자. 이 결정은 기술 발전과 인간의 필요를 조화시키려는 더 큰 투쟁을 상징한다. 겉으로 보기에 셀프 체크아웃 기기는 진보를 의미한다. 더 효율적이고 비용 효과적인 사업 방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절도 증가로 이어져, 원래 의도했던 효율성을 오히려 저해하게 된다. 인간 행동의 변덕스러움, 즉 허점을 악용하고 한계를 넘으려는 경향이 다시 한번 진보의 톱니바퀴에 걸림돌이 된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영화 “아이, 로봇(I, Robot)“은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윤리적 갈등을 드러낸다. 영화 속에서 로봇은 생존 확률을 계산하여 차가 물에 빠진 상황에서 성인을 구하고 어린 소녀를 버린다. 로봇은 계산된 논리에 따라 행동하지만, 이는 인간의 감정적이고 윤리적인 기대와 충돌한다. 차가 물에 빠진 상황에서 로봇이 구조할 대상을 선택할 때, 로봇의 냉정한 논리가 소녀를 희생시키고 어른을 구하는 결정을 하게 만든 것이다. 이 장면은 인간의 도덕적 직관과 기계의 논리적 사고 사이의 깊은 간극을 상징한다. 사람의 감정과 이성 사이의 갈등이 여기서 두드러지며, 이는 진보가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윤리적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은 현재 인류가 탐색하고 있는 더 큰 윤리적 미로를 잘 보여준다. 인류가 계속해서 혁신을 추구할 때, 잠재적 이익과 위험을 끊임없이 저울질해야 한다. 신인류에 대한 갈망, 이러한 함정을 초월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갈망은 칭찬할 만하지만, 그것은 인간 본성을 더 깊이 이해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단순히 이상적인 해결책을 위에서 내려보내고 그것들이 완벽하게 작동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대신, 동기, 욕망, 결함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복잡성을 고려해야 한다.
아마도 신인류를 실현하는 열쇠는 거창한 계획이나 기술적 기적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더 세밀한 접근에 있을 것이다. 새로운 자극에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하고, 행동이 불러올 의도치 않은 결과를 미리 내다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겸손이 필요하다. 인간이 생각하는 만큼 합리적이거나 예측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결국, 신인류에 대한 갈망은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를 위한 노력이다. 이는 인류가 결코 완전히 극복할 수 없는 결함을 인정하면서도, 복잡성을 더 잘 수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이는 인간 행동을 엄격한 시스템으로 통제하려는 시도에서 벗어나, 더 나은 자아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달려 있다.
영화 아이, 로봇에서 델 스푸너 형사가 로봇에 대해 갖는 불신은 단순히 로봇의 논리적 판단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적 요소, 즉 감정, 공감, 그리고 복잡한 윤리적 고려가 결여된 기계적 사고방식에 대한 불신이다. 이 불신은 인간과 기술 사이의 영원한 긴장을 잘 나타낸다. 인류의 진보를 향한 여정은 결국, 우리가 우리의 결함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는 가에 달려 있다. 더 나은 자아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열망은, 그만큼 인간 본성의 복잡함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