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들어야 보이는 빛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루카 9,35)

by 어엿봄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도 보았다. 그 두 사람이 예수님에게서 떠나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데 구름이 일더나 그들을 덮었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겁이 났다. 이어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이러한 소리가 울린 뒤에는 예수님만 보였다. 제자들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루카 9,28ㄴ-36)


예수님의 얼굴과 옷이 환히 빛난다. 그분의 존재가 눈이 부시게 빛난다. 제자들은 그 황홀한 순간을 놓치고 싶지가 않다. 영광은 영원하리라! 하지만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있다. 그 목소리는 봄이 아니라 들음을 말한다. 제자들은 정신을 차리고 황홀함은 마음에 품은 후 들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되새겨야 한다.


오늘 복음에서의 이 들음에 대한 초대가 신선했던 까닭은 하늘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관계성 때문이었다. 하늘의 그분이 주님을 사랑하신다. 그 사랑을 전제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니, 우리 사이의 관계에도 사랑이 있다. 삼위의 사랑이 결국 향하는 곳은 우리 자신이다. 밝은 빛을 품은 주님에게 우리는 감동한다. 그분의 아름다움이 우리 마음을 울린다. 그분의 말씀은 들어져야 하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 아름다움이 우리에게서 다시 반사될 때, 황홀경에 빠진 우리의 얼굴을 주님께서 보신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신다.


내가 누군가에게 드러난다는 것, 그 누군가 유심히 내 표정을 살피고 내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참 가슴 벅찬 일이다. 그 벅찬 관계를 우리가 살아간다.


타볼산에서의 그 만남이 우리를 살게 한다. 결국 언젠가 우리 눈앞에서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차가운 주검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고통의 순간을 피할 수 없다. 만일 그 고통을 피한다면 그건 자신의 죽음을 택하는 일이다. 우리의 자유는 몸속 깊이 파고드는 아픔을 그저 살아내며 죽음을 끌어안을 때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 죽음의 어둠 속에서 잠시 스쳐 지나간 그 환한 생명의 빛을 떠올린다. 그 따스함이 내게 온기를 더한다. 주님은 다시 살아서 내게 오실 것이며, 나에게 환한 생명을 나눠주실 것이다.


타볼산의 기억은 그렇게 내가 영원히 그분 안에, 그분 사랑 안에 머무르게 한다.


아침 해가 참 밝다. 하늘의 태양과 땅의 나무와 작은 벌레들이 주님을 찬미한다. 이 찬미의 노래가 그분 귓가에 울리길 바란다. 그분이 말씀하시면 나는 들으리라.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창공은 그분 손의 솜씨를 알리네.
낮은 낮에게 말을 건네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네.
말도 없고 이야기도 없으며 그들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지만
그 소리는 온 땅으로, 그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가네.

(시편 1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