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바라봄의 사랑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마태 14,13)

by 어엿봄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제자들이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에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마태 14,13-21)


예수님의 눈은 군중의 배고픔을 읽어내고 느낀다. 그분의 마음은 그들을 향한 연민과 자비로 가득 차 있다. 그분의 눈은 또한 제자들의 가난함으로 향한다. 가진 것이 별로 없지만 그 작음의 가능성을 읽어내는 주님의 눈이 빛난다. 제자들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마음은 그들을 향한 믿음과 지지로 가득 차 있다. 그분의 눈은 다시 하늘로 향한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바라보고 계시니, 필요한 것을 넉넉하게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이다.


주님의 시선은 깊은 공감을 낳는다. 그분이 바라보는 한 사람이 얼마나 병들고 또 굶주렸는지, 그분은 스스로 취하신 인간의 육으로 그 모든 것을 이해하신다. 그러나 주님의 시선은 그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사람의 깊은 곳을 바라보는 눈이지만 그 깊이에만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시선이다. 주님의 바라봄은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진다. 아픈 이들을 고쳐주고 배고픈 이들을 배 불리는 사랑의 실천이다.


나는 이런 그분의 바라봄이, 믿어줌이, 내어 맡김이 그리고 나눔이 참 좋다. 잠시 질문해 본다. 나의 바라봄은 어느 정도의 깊이에서 시작되고 있을까?


어제 자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진통제를 먹었다. 눈물이 또로록 흘렀다. 너무 아팠다. 그러다 그 어떤 이유에서든 고통 속에 잠 못 이룰 사람들을 떠올렸다. 나의 고통은 그들의 것에 비하면 작은 먼지에 지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세상엔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고통을 깊이 읽어주고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가리어지지 않은 맑고 깨끗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 그 바라봄으로 사랑 가득한 마음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너의 온몸이 환할 것이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너의 온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크겠느냐?
(마태 6,22-23)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님, 예수님 닮은 그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당신의 양 떼를 돌보셨지요?

가난하고 아픈 이들에게 성사를 베풀며 평생을 헌신하신 당신의 성실함을 기억합니다.

온갖 지식으로는 담보할 수 없는 진정한 사랑을 삶으로 보이신 당신의 겸손함을 기억합니다.

맑고 깨끗한 눈으로 우리 서로를 바라보고 귀 기울이며 아픈 곳 쓰다듬도록 저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맑은 눈만큼 환한 우리 몸의 상처에서 새 빛이 터져 나오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당신과 함께 사랑의 주님을 찬미하는 오늘입니다.

남겨 주신 모범의 생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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