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길을 응원하자
프롤로그.
하루(이하 여자친구)를 만나기 전의 이야기를 몇 편에 걸쳐 적어보려 합니다. 시점은 스무 살, 하루를 만나기 직전의 제 모습입니다.
대학교 합격, 그리고 안도
xx대학교 합격 소식을 들었다. 전액 장학금에, 학기마다 쓸 수 있는 지원금까지. 학교가 정해지자, 이제 정말 성인이 된 기분이었다. 난 엄연한 대학생이었다.
물론 그 대학은 내가 들어본 적도 없는 곳이었다. 생각보다 한국에 대학교는 많았다. 나는 너무 높은 곳만 바라보다, 당장 옆의 길조차 보지 못한 것이다. 바쁘게 살다 보니 당연한 것들을 놓쳐버린 기분이었다. 목표와도, 아버지와의 약속과도 다른 길이었지만 이때 나는 안주하는 법을 배웠다. 이 대학 저 대학이든 나는 잘할 것이다.
“대학을 온 게 어디냐.” 누군가는 돈이 없어, 누군가는 사정이 있어 배우고 싶어도 못 배우는데, 나는 이렇게라도 배우게 됐으니. 좋은 면을 보자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이제껏 어둠과 친구였으니 새로운 친구를 만들 때였다.
마지막 운동부 회식의 시작
그래서 마음을 먹었다.
“다들 모여서 고깃집에서 술 한잔할까?”
처음엔 친한 친구 넷이 모였다. 우리는 운동부 출신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구르고, 군 대표, 시 대표, 도 대표, 전국체전까지 같이 뛰던 사이. 훈련도 고생도 함께했던 우리는 의리 하나만큼은 끝내줬다.
저녁 여섯 시에 시작한 자리는 밤 열 시가 되자 스무 명을 넘겼다. 연락을 돌리니 사이가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하나둘 모였다. 동창이란 동창은 다 들린 기분이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가볍게 얼굴 보고, 오해는 풀고, 사과할 건 사과하고. 지금 아니면 언제 다시 볼까 싶었다. 곧 모두 각자의 길을 걸을 테니까.
고기와 술, 그리고 취중진담?
처음엔 고기에 정신이 팔렸다. 대패삼겹을 몇 인분을 먹었는지 기억도 없다. 그 당시 1인분에 2,900원이었으니 크게 부담은 아니었다. 고기를 굽고 술을 따르며, 훈련 이야기, 연애 이야기, 학창 시절이야기, 힘들었던 이야기까지. 대화는 자연스럽게 주최자인 내 이야기로 옮겨갔다.
친구들은 궁금해했다. 다들 나란 사람을 특별하고 남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들 했다. 이야기를 듣고도 믿지 않는, 비로소 눈으로 보고 나서야 믿는. 나도 옛날엔 다사다난한 삶을 살아왔다고 느꼈지만 많이 성장한 지금 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넓고 각자 자기만의 스토리와 힘듦은 존재하기에.
아무튼 나는 이야기를 조금씩 꺼냈고,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나를 껴안고 우는 친구, 조용히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친구, “고기는 내가 낸다”며 웃는 친구. 그 순간, 참 따뜻했다. 진지하든 슬프든, 좋은 일이든, 가볍게 웃고 넘기며 별일 아닌 듯 받아들이는 그게 우리의 매력이었다.
하지만 가끔씩 친구들의 행동의미가 어찌 됐든 나는 날 안아주고 울며, 그런 동정과 연민이 미치도록 싫었다. 그래서 모든 걸 다 말하지는 않았다. 내 과거를 전부 아는 사람은 지금까지 두 명뿐이다. 스승님과, 날 키워준 한 분. 심지어 여자친구도 절반밖에 모른다. 스승님께서 과거를 말할 때에는 신중 그리고 또 신중을 가하라고 하셨다.
여자친구한테는 언젠간 날 전부 오픈할 날이 올 것이다.
새벽, 그리고 작별
새벽 두세 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친구들. 다 탄 고기. 누군가는 바닥에 널브러져 자고, 누군가는 고성방가를 하며 누군가는 비틀거리다 유리창을 깨뜨렸다. 사장님께 너무 죄송했다. 작은 마을이라 우리밖에 없긴 했지만, 민폐는 끼치면 안 되니까 사과를 거듭했다.
나는 술에 잘 취하지 않는 편이라 멀쩡했다. 마지막 잔을 들고 말했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 그동안 함께라서 재밌었다. 서로 앞으로를 응원하자”
짠.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회식이 막을 내렸다. 운동 코치진 없이 한 회식은 정말 처음이지 않았을까? 게다가 술이 껴 있다니.
계산은 내가 했다. 180만 원. 하지만 괜찮았다. 모두가 즐거웠다면, 돈이 무슨 대수랴. 물론 친구들이 랜덤 하게 금액을 보내주긴 했지만, 오히려 더 좋은 음식과 좋은 장소를 못 해준 게 미안했다.
그리고 그 시점을 끝으로, 나는 조용히 사라졌다.
첫 관문, 어디서 살 것인가
대학교의 첫 관문은 집이었다.
자취할까, 통학할까, 기숙사에 들어갈까.
자취는 중학교 시절 원치 않게 해 본 적이 있다. 심심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청소와 밥, 비용 관리까지 전부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공허함을 선물해 줬기에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내 집’이라는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통학은 어머니를 챙기고 함께 식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왕복 3시간. 하루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는 건 낭비 같았다.
기숙사는 밥도 나오고 관리도 편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과 같은 방을 쓴다는 건 부담이었다. 혹시 성향이 안 맞으면? 상상만으로도 피곤했다.
이미 고등학생 때 경험을 해봤으니.
기숙사 발표는 늦고, 불안은 커지고
기숙사 신청은 이미 해놨다. 그런데 발표가 늦어졌다. 초조했다. 혹시 떨어지면? 불안감은 점점 커졌다. 결국 나는 결심했다. 자취방을 알아보자라고.
경제관념도 없었고, 물가도 잘 몰랐다. 바보처럼 공부랑 운동밖에 안 했어서, 소위 멍청했었다. 그래도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다. 학교 앞 부동산 몇 군데를 돌며 시세를 확인했다. 머릿속에 정해둔 조건은 단순했다.
학교까지 거리, 비용, 층수.
사실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이 사는 데 뭐가 필요해. 방만 있으면 되지.”
120분, 그리고 계약
부동산을 돌아다니느라 꼬박 두 시간을 썼다. 피곤했다. 그래서 더는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학교 도보 5분 거리, 2층, 방은 넓고 조용했다. 보증금 150만 원, 월세 35만 원. 나쁘지 않았다.
계약을 앞두고 이런 제안이 들어왔다.
“1년 치를 한 번에 내면 더 싸게 해 줄게요.”
나는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500만 원을 지불하고 계약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사글세라고 월세를 한 달을 빼주는 그런 거였다.
홀로서기의 시작
방 사진을 몇 장 찍어 어머니께 보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필요한 물품을 리스트로 적었다.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소박한 삶을 꿈꿨으니깐. 실제로 가진 것도 없었다. 이불과 수건 정도면 충분했다. 물론 이것도 근처 마트에서 살 수 있었지만 누나와 어머니가 쓰는 수건이 되게 촉감이 좋았기에 챙겼다. 체취도 잊지 않을 겸.
그렇게 나는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제대로 된 홀로서기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