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비교

by 감자돌이

하루와 여러 대화를 나누며, 나의 사고 과정과 가치관을 정리해 둘 필요를 느꼈다. 나는 원래도 생각을 글로 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더 건강한 마음을 갖는 데 작은 도움은 되고 싶다. 무엇을 첫 주제로 삼을지 고민하다 가장 자주 떠오른 것이 ‘비교’였다.

비교는 사전에 “둘 이상의 대상을 견주어 유사점과 차이점을 고찰하는 일”로 정의된다. 여기서 말하는 대상은 사물에 한정되지 않는다. 생각, 사람, 자아, 시간처럼 추상적 개념까지 모두 포함한다. 적용 범위가 넓기 때문에 지금 시대의 사고방식은 비교를 기본 구조로 갖는다.


비교는 인간 뇌의 자동화된 인지 과정이다. 새로운 정보를 접하면, 뇌는 기존 기억과 대조해 분류하고 판단한다. 시각 피질은 색·형태 같은 특징을 분석하고, 전전두엽은 그 정보의 의미를 평가한다. 이 과정은 의식적으로 통제하지 않아도 작동한다. 제대로 활용하면 판단력을 높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왜곡된 기준을 만들고 불안을 키운다. 현재 내가 그러한 상황이다.


예를 들어, 내가 사과를 들고 있다고 하자. 누군가(a)도 사과를 들고 있는 걸 보면, 뇌는 두 사과의 색, 형태, 신선도처럼 측정 가능한 속성을 자동으로 비교한다. 이는 자연스러운 정보 처리다. 상대 역시 같은 비교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각자가 가진 ‘참조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며, 비교는 본질적으로 주관적이다.


비교 이후의 행동은 다양하다. 사과를 어디서 샀는지 묻는 단순한 호기심이 생길 수도 있고, 더 나은 사과를 찾기 위해 행동이 이어질 수도 있다. 혹은 자신이 사과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더 깊게는 사과가 없던 시절을 떠올리며 의미를 재해석하게 만들 수도 있다.


나 역시 비교를 많이 한다.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이 비교가 부정적으로 작동했다. 스스로 괜찮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최고 수준의 사람과 나를 나란히 놓았다. 결과는 자책과 상처였다. 나는 나인데, 왜 타인의 기준 위에서 나를 평가해야 하는가.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 이유는 없다.


나는 오래전부터 주변 사람들의 고민을 많이 들어왔다. 상담이라는 이름은 아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 역할을 해왔다. 비교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늘 같은 얘기를 건넨다. “너는 그 사람보다 잘하는 영역이 반드시 있다. 누구에게나 고유한 장점이 있다.”


하루와도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하루는 가끔 장난스럽게 나를 유명인과 비교하곤 한다. 하루는 내 가치관과 마인드를 좋아해 줬다. 어느 날 하루가 말했다. “근데 너는 차은우만큼 잘생긴 건 아니잖아?” 농담이었지만, 그 대화는 내가 비교를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는지 다시 생각하게 했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맞아. 그는 외모가 강점이지. 하지만 난 운동과 체력에는 자신 있어. 지금까지의 삶을 스스로 관리해 왔다는 점에서 정신력도 강하다고 생각해.” 하루는 웃으며 “차은우도 운동 시작했다던데?”라고 말했다. 나는 그대로 받아줬다. “그러면 난 또 다른 영역에서 장점을 찾으면 돼. 사람은 각자 강한 방향이 다르니까.”


대화는 유치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핵심은 단순하다. 누구와 비교하든, 들여다보면 각자 우위에 있는 지점이 있다. 비교는 정보를 조직하는 자연스러운 인지 과정이지, 한 사람의 존재 가치를 결정하는 도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기준점을 세우고, 그 비교를 어떤 방향으로 사용할지다.


바쁜 사회 속 많은 사람들이 비교 속에서 살아간다. 나는 비교가 서로의 장점·단점을 파악하고, 더 좋은 부분은 흡수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는 성장의 도구로 쓰이길 바란다. 비교 때문에 스스로를 소모하지 않았으면 한다. 비교는 그저 비교일 뿐이니까.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