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대하는 교육자의 마음가짐
어차피 사람은 뭘 해도 안바뀌어!
이 문장은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 중 내가 가장 듣기 싫은 문장이다. 정범모는 교육을 인간 행동의 계획적인 변화라고 정의했다. 오늘은 정범모가 정의한 '교육'을 바탕으로 교육자가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이 정의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세 가지, '인간 행동', '계획적', '변화'이다. 교사마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교육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변화"라고 생각한다. 즉, 교육 전문가로서의 교사는 인간의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야기 하는 교직관은 총 네 가지가 있다. 성직관, 노동직관, 전문직관, 공직관이 그것이다. 교직관은 하나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만 해도 교육 계획을 세울 때에는 성직관, 수업 외에 학교 행사를 할 때에는 노동직관, 수업이나 상담을 할 때에는 전문직관, 근태에 대해서는 공직관을 모두 가지고 있다.
교사가 왜 전문직이야?
교직관 중 전문직관에 대해 이야기 하면 많이들 하는 이야기이다. '교육'이라고 하는 행위를 단순히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몸을 씻기고, 잠은 재우는 행동으로 인식을 한다면 절대로 전문직관을 이해할 수 없다. 학교의 교사는 국가가 인정한 자격증인 교원자격증을 소지한 자만 할 수 있다. 교원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교원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대학교나 대학원에 들어가 학점 이수와 실습을 해야한다.
"선생님은 애를 안키워봐서 잘 모르시죠?"
교육의 목표 중 하나는 사회화이다. 나는 학생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하며 책임을 지고, 의견을 제시하여 조율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그렇기에 학부모님과 상담할 때 아이들의 의견을 경청 해달라는 부탁을 자주 하곤 한다. 그럴 때 부모님과 사이가 안좋은 아이의 학부모님들은 나에게 '우리 애는 자기 스스로 할 줄 아는게 없다.', '아이가 성장할 때 까지는 어른이 시키는대로 하면 된다.' 등 아이의 의견을 묵살하는 것 같은 이야기를 하신다. 이러한 이야기가 바로 교사의 전문직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의 의견이다.
전문직의 역할
그렇다면 과연 전문직이란 무엇일까? 밀러슨은 전문직의 요건으로 여섯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이론적 지식에 기초한 기능을 필요로 한다.
둘째, 기능은 훈련과 교육을 필요로 한다.
셋째, 전문직 종사자는 능력이 입증되어야 한다.
넷째, 행동 규범을 준수하고 청렴성을 보여야 한다.
다섯째, 공공의 복리를 위한 봉사를 해야한다.
여섯째, 전문직은 조직화를 이루고 있다.
만약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모두 끝낸 환자에게 의사가 '저는 이 병에 대해 전혀 아는게 없어요'라고 한다면 어떨까? 아니면 억울하게 오해를 받아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고소를 당해 변호사를 찾아갔을 때 '전 이거 어떻게 승소할 지 모르겠네요'라고 한다면 어떨까?
당연히 의사로서, 변호사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것이다. 이는 전문직의 여섯 가지 요건 중 세 번째인 능력의 입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엔 다른 상황을 이야기 해보자. 의사에게 진료를 보러 갔을 때 의사가 정확한 원인을 분석하고 증상을 토대로 질병을 진단 했다고 하자. 그 때 환자가 '근데 인터넷에서는 아니래요'라고 한다면 의사는 어떻게 해야할까? 또는 변호사가 여러 판례와 법리를 근거로 승소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 했을 때, '유튜브 찾아보니까 아니던데요?'라고 한다면 변호사는 어떻게 해야할까?
만약 여기에서 환자나 의뢰인을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는 의사나 변호사도 있다고 해보자. 이는 전문직의 여섯 가지 요건 중 네 번째와 다섯 번째의 청렴성, 공공의 복리를 지키지 않았기에 전문직으로서 역량이 떨어져 보인다.
전문직으로서 교사의 역할
학교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학생을 만날 수 있다. 예의 바르고, 본인의 역할을 다 하고, 사회성도 높아 모두가 좋아하는 학생이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예의도 없고, 매일같이 교칙을 어기고, 모든 사람과 적대감을 가진 학생도 있을 수 있다.(물론 두 경우 모두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학생은 아니다)
사실 전자의 학생은 교사가 추가적으로 교육을 하지 않더라도 '사회화'라는 목적은 이미 달성한 것으로 보여진다. 반면에 후자의 학생은 어떠한가? 어디부터 교육을 시작해야 할 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교사마다 능력, 경험, 학생의 상태 등 다양한 변인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것이다. 누군가는 생활교육위원회를 열어 학교에 오도록 할 것이고, 누군가는 가정방문을 통한 상담을 진행할 것이고, 누군가는 전문 상담교사에게 의뢰하여 상담을 진행할 수 있다. 즉, 이런 상황에서 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오답은 확실히 정해져 있다.
어차피 얘는 뭘 해도 변하지 못할테니 포기할래.
이런 선택은 교사 스스로 본인의 전문성을 깎아 동료교사, 학생, 학부모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문가로서의 신뢰도를 깎아먹는 행동이다. 결국 학생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타인으로부터의 신뢰도를 위해서라도, 교사 자신의 양심을 위해서라도 절대 학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많은 교육자들에게 질문을 남기며 글을 마무리 하고 싶다.
“학생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 나는 교사로서 무엇을 믿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