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하는 인간, 호모 에루디티오

교육의 필요성을 기반으로 한 '인간'에 대한 철학적 고찰

by 교육학Diary


교육은 인간의 전유물이다.


사람은 누구나 배움을 통해 자라고 있다. 아이가 처음 걷는 법을 배우고,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세상을 배워가며, 어른이 된 뒤에도 새로운 일을 익히며 성장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을 철학적으로 고찰해보자면 생각하는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서, 학습하며 성장하는 인간인 호모 에루디티오(Homo Eruditio)라고 부를 수 있다. 즉,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될 수 있는 가장 큰 차이가 바로 교육을 통한 배움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 집 강아지 알콩이도 교육을 받아서 행동이 변했어요!"

"사육사에게 교육을 받은 곰이 장기자랑을 하던데요?"


교육을 통한 배움에 대한 의견을 얘기 할 때 항상 듣는 말이다. 우리는 '배움'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훈련'인지, '교육'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기술을 익히는 것과 인간을 길러내는 것은 분명히 다른데, 이 두 단어는 일상에서 자주 뒤섞인다. 그러므로 '교육'이란 단어의 본질적 의미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위키피디아에서는 훈련(Training)을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특정한 유용한 능력과 관련한 능력, 지식을 교육하고 계발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즉, 훈련은 특정한 능력이나 성과에 목표를 두고 하는 행동이라 볼 수 있다.


훈련-교육.jpg 생성형 AI가 만든 훈련(좌)과 교육(우)


교육은 학자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를 한다. 칸트는 '인간을 인간답게 형성하는 작용', 뒤르껨은 '사회 규범과 의미를 전수하는 체계적 사회화', 듀이는 '끊임없는 경험 개조의 과정, 경험을 사회적이고 실용적으로 넓히고 깊게 하는 것' 등으로 정의를 하고 있다. 교육의 다양한 정의를 보면 전반적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행동을 변화하는 것으로 정의를 하고 있다.


즉, 나는 교육은 '인간을 더 나은 존재로 변화시키는 과정', 훈련은 '특정 기술이나 능력을 반복 연습하여 성과를 내도록 하는 과정'으로 두 단어를 구분 짓고 싶다. 결국 훈련과 교육의 목적은 각각 기술과 인간에 있다. 그러므로 훈련은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에게도 가능하지만, 교육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다.


공동체의 교육에 대한 역할


더 나은 존재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의미하는 교육은 결국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고찰하도록 해야한다.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나는 누구인가',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인가' 등의 발전적인 질문을 통해 발전해 나아가야 한다. 즉, '교육'은 성찰(省察)을 통해 발전하도록 하는 활동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성찰할 수 있을까?


혼자 스스로를 비추는 일은 생각보다 매우 어렵다. 성찰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로, 다양한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성장한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함께한 경험, 타인의 시선 등을 통해 스스로 돌아본다. 그렇기에 교육은 공동체에서 이루어져야만 하며, 개인의 내면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하며 완성되는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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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


이 오래된 아프리카의 속담은 한 인간이 온전하게 성장하기 위해 사회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비단 아프리카뿐 아니라, 어느 사회에서나 교육은 공동체의 역할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는 '함께 키운다'는 말 대신 '내 아이만 잘되면 된다', '나만 잘 하면 된다'는 말이 더 익숙하다. 교육이 공동체의 일에서 개인의 전략으로 바뀌는 순간, 배움의 본질은 경쟁으로 왜곡된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는 과연, 함께 성장하는 교육을 실현하고 있는가?"


입시의 한계, 교육의 왜곡된 시선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리의 교실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이미 경쟁이 공동체를 대신하고 있다. 오늘날의 한국 교육은 '함께 성장하는 일'이 아니라 '혼자 살아남는 일'로 변해버렸다. 학교는 더 이상 공동체가 아니라, 경쟁의 전장이다. 배움의 이유는 사라지고, 성적과 입시 결과가 교육의 목표로 설정되어 아이들을 가르친다. 아이들 또한 스스로 돌아보며 자신을 이해하기 보다,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두려움에 타인을 깎아 내리기 급급하다.


combined_education_contrast.png 질문에 적극적인 답변을 하는 교실(좌)과 질문을 외면하는 교실(우)


수업 중 이루어지는 대화는 '생각'이 아닌 '정답'을 향한다. 교사의 질문도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하니?' 같은 개방형 질문보다 '이 문제의 정답이 무엇이니?' 같은 폐쇄형 질문이 많아진다. 수업 중 교사의 개방형 질문에 거침없이 답을 하던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에 비해, 정답을 맞춰야 하는 폐쇄형 질문에는 답을 모른다는 부끄러움에 대답을 하지 않는 환경이 만들어지게 된다.


우리의 교육은 점차 생각할 기회를 주기 보다, 더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한 비교의 기술을 익히는데 초점을 둔다. 이 과정에서 교육은 본래의 목적을 잃는다. 즉, 인간을 완성시키는 일에서, 인간을 선별하는 일로 변질된 것이다.


"선발 및 배치는 교육의 기능이다"


교육사회학을 배웠다면 모두 들어봤을 법 한 이야기이다. 물론 교육은 선발 및 배치의 기능을 해야하고, 나 역시 이에 대해 반론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선발 및 배치를 위해 아이들의 특성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교육이 경쟁의 수단이 될 때, 배움은 더 이상 성찰이 아니다. 점수는 인간의 가능성을 측정하지 못하고, 등수는 사람의 가치를 대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이들의 등수와 희망대학을 질문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교육해야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학교의 존재 이유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다. 학교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공간이며,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공간이자, 인간을 길러내는 공동체이다. 수많은 아이들이 교실에서 관계를 배우고, 실수를 통해 성장하며,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는 법을 익힌다. 이 모든 과정이 교육이다.


하지만 어느새부터인가 학교는 입시를 위한 중간 다리 역할이 되었다. 사람을 기르기 보다 좋은 입시결과를 목표로 하게 변화 되어갔다. 이에 따라 학교에서는 학생을 위한 질문보다 대학을 위한 질문이 많아졌다. 진도에 급급한 교사는 학생의 눈빛을 놓치고, 이를 따라가기 위한 학생은 답을 외우느라 생각의 깊이를 잃는다. 이러한 교실이 과연 학생을 위한 곳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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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드는 장"


학교의 목적이자, 본질이고, 존재 이유이다. 이를 위해 학교는 '무엇을 아는가?'를 묻기보다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를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지식은 사람을 완성시키는 도구일 뿐,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학교는 지식을 가르치는 동시에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함께 살아가는 감각을 익혀야만 한다. 한 아이의 깨달음이 교실 안에서 자라고, 학교를 넘어 사회로 확산될 때, 비로소 교육은 완성된다.


호모 에루디티오(Homo Eruditio), 학습하는 인간


인간은 배우며 성장하는 존재이다. 아이로 태어나 걷는 법을 배우고,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며 살아간다. 배움은 단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평생동안 함께 해야하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철학적으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생각하는 인간)'보다 '호모 에루디티오(Homo Eruditio, 학습하는 인간)'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교육은 인간을 완성시키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 여정 속에서 우리는 타인을 통해, 실패를 통해, 성찰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고 더 나은 존재로 변화되어야 한다. 배움이 멈추는 순간, 인간의 변화는 멈출 것이고 성장은 멈춘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배움이 다시 시작한다면 시간, 장소,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배움은 누구에게나 열린 기회일 것이고, 변화는 어떤 노력에도 응답을 해줄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더 나은 존재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는 배움이라는 과정의 가운데에 서 있다. 학교가 공동체에서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어 '사람을 만드는 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교육은 단순한 제도가 아닌 인간의 존재 방식을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우리는 다시 묻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배우고, 어떤 성찰 속에서, 더 나은 존재로 변화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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