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같은 내 인생
사람은 사실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고민하는 동물이다.
늘 같은 고민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것이다. 오늘 뭐 먹지?
이 뭣 같은 고민은 하루도 거르는 일이 없다.
수십 년을 먹어왔고 앞으로도 수십 년은 더 먹을 텐데.
하루 정도 거른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무튼 배가 고프니 식욕이 돋는다.
위산과 침 그리고 약간의 짜증이 고인다.
오늘도 짜증 나게 배고프네.
냉장고를 열어본다.
일주일 전에 사놓은 간편음식들이 아직 그대로 있다.
유통기한이 임박했지만 딱히 땡기지도 않으니
내일의 나에게 슬쩍 폭탄돌리기를 해본다.
아아, 오해할까봐 말해두는데,
내일의 나라고 해서 저것들을 먹을 리는 없을 것이다.
굳이 만들어 먹는 수고를 들이기 싫은 건
내일의 나 역시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래도 살 때는 먹을만해 보이던데
왜 냉장고에만 들어가면 음식물쓰레기가 되는 거지?
아, 몰라. 고민하기 싫어. 그냥 시켜 먹을래.
이번 주까지만 시켜 먹고 다음 주부터 꼭 식단 관리 해야지.
그래서 오늘도 배달음식이다.
그치만 오늘은 평소에 안 먹던 색다른 거 먹자.
물론 맵고 달고 짤 테니 물리는 건 매한가지겠지만,
지겨운 맛은 조금 덜 하지 않겠어?
마라탕? 내 취향 아냐.
떡볶이? 탄수화물이야.
중국집? 잔반 처리하기 곤란해.
족발? 느끼해. 불닭족발은 더 느끼해.
팟타이? 음.. 괜히 시켰다가 실패하면?
와플? 배달 오면 눅눅해질 텐데?
뭐가 확실하게 딱 땡겨야 고르든가 하지.
그래서, 오늘도 돌고 돌아 결국 치킨이야?
어제 먹은 치킨 리뷰 별점도 아직 안 말랐는데.
몰라몰라. 시키자. 배고프니까.
뼈 버리기 귀찮으니까 순살로. 소금 찍기 귀찮으니까 양념으로.
아, 그리고 치킨무 주지 마세요. 어제도 말했는데 주셨더라고요.
음, 치킨 냄새.
냄새만 맡았는데 벌써부터 치가 떨린다.
봐라. 오늘도 후회할 줄 알았다.
이 맛은 뭐랄까.
이 맛은 마치 내 인생 같은 맛이로다.
계획은 늘 그럴싸하지만
막상 실행만 하려면 내일로 튀어버리는
나 같은 맛이렸다.
참 비참한 게, 그래도 들어는 간다?
치킨 맛에 적응해 버린 걸까,
이런 삶에 적응해 버린 걸까.
아아. 속이 더부룩해진다. 양심이 배를 쿡쿡 찌른다.
그냥 냉장고 털어서 대충 때울 걸.
오늘만큼은 그냥 눈 꾹 감고 뭐라도 해볼 걸.
나도 이제 치킨은 그만 먹고 싶다.
치킨 냄새에 물리는 지겨운 삶 대신
치킨 한 조각의 행복을 아는 삶을 살고 싶다.
매일매일 후회로 고통 받는 삶 말고
하루라도 후회 없는 후련한 삶을 살고 싶다.
되돌아가고 싶다. 열정이 있던 때로.
미래를 내다보고 결론부터 지어버리는 지금이 아닌
잠재력을 믿고 결말을 바꾸려던 시절의 나로.
어떻게 해야 돼? 내일은 또 뭐 먹어?
고민 되네.
그건 그렇고.
하루에 고작 한 끼 먹는데
뱃살은 대체 왜 늘어나는 거야?
먹기만 하고 운동을 안 해서?
고민만 하고 실행을 안 해서?
고민이 되는데 어떡하니.
나도 다 잘 되려고 하는 고민이잖아.
근데 고민할수록 고민만 더 깊어지잖아.
살이 빠진다는 보장도 없는데.
한다고 잘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기껏 시간 들여놓고 안 되면 어떡하려고?
진짜 고민이다. 앞으로 뭐 해먹고 살아야 돼?
이러다 결국 내일도 치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