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일의 정의

by 태리

매일 아침출근하고 같이 일하는데 사무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끼리도 일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일의 정의' 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누군가에게 일은 사고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일은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간극 사이에서 언쟁이 발생한다. 회의 또는 일에 대하 약간의 다툼이 있고나서 문득 의문에 빠진다.

“도대체 일의 본질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이토록 다른 언어를 쓰고 있는가?”

단순히 월급을 받기 위한 행위를 넘어, 직장에서 진짜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만의 일에 대한 철학적 기준, 즉 ‘일의 본질’에 대한 정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판단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속도와 방향에 휘둘리다 결국 내가 소진되고 말기 때문이다.


과거의 철학자들은 노동을 존재의 '완성'으로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에너지아(Energeia)’: 그는 일을 잠재력을 현실로 꽃피우는 과정이라 보았다. 일의 본질은 내가 가진 탁월함(Arete)을 발휘하여 최선의 결과물을 만드는 데 있다. "안 되는 이유"를 찾기보다 "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태도는 바로 이 인간적 탁월함을 증명하려는 본능적인 행위다.


헤겔의 ‘대상화(Objectification)’: 내가 가진 생각과 에너지를 외부 세계에 투영하여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일의 본질이다. 즉, 일은 나를 세상에 증명하는 방식이다. 고객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나의 에너지를 외부의 필요에 맞춰 투입하고, 그 결과로 세상과 연결되는 고결한 과정이다.


실존주의적 결단: 사르트르의 말처럼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일의 본질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태도로 업무에 임하느냐에 따라 매 순간 새롭게 창조된다. 내가 일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면, 그 순간 나의 일은 단순한 노동에서 가치 창출로 격상된다.


내가 생각하는 일의 본질은 일은 되게 하는 것이다.

안되는 이유를 찾지말고 어떻게 하면 될 지를 생각해야 한다.


기준과 절차가 있다. 그 떄는 맞는 기준과 절차가 지금은 안맞을 수 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시간이 흐르면 과거의 것을 적용하는 것이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나와는 다르게 일의 본질에 대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일의 본질은 리스크의 통제에 있다.


조직은 개인의 유능함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해진 절차를 100명이 똑같이 지키는 것이 조직 전체의 비용(사고 처리 비용, 법적 리스크 등)을 줄이는 길이다. 누구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면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절차라른 것이 있는 것이다. 게인의 판단을 배제하고 정해진 규칙을 기계적으로 집행할 때 가장 공정할 수 있다.


일을 할때도 그렇다. 문제를 해결하려면(되게 하려면) 수많은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어쩌면 수많은 연결고리를 풀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규정상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가장 적은 에너지로 상황을 종결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어쩌면 그 조직은 과거에도 충분히 고려한 것인데, 왜 문제제기 하냐고 할 수 있다. 실무자들은 그들의 심리적 안전감을 위한 것이다.


우리에겐 업데이트라는 좋은 단어가 있다.

기존의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상황에 맞게 최신화 하는 것이다. 이것도 매번 하면 안된다. 기준이 흔들릴 수 있다. 그렇기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일이 되게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업데이트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동료의 '절차'를 무시하지 않되, 나의 '본질(해결)'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절차를 지키는 이들의 방식을 인정하고, 동시에 "지금의 고객에게는 이 업데이트가 필요하다"는 근거를 끈질기게 들이밀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써 변화하는 것 그것이 내가 정의한 진짜 '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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