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같은 업무지시

by 태리

상사의 지시 내용을 해석하는 일은 지독한 시간 낭비다. 도대체 뭘 하라는 건지 알 수 없는 암호 같은 지시가 내려올 때가 많다. 질문도 한두 번이지, 자꾸 되묻다 보면 내 능력이 없어 보일까 봐 겁이 난다. 제대로 알아먹지 못한 채 일을 시작하면 진도가 안 나갈 것을 뻔히 알지만, 그럼에도 다시 입을 떼는 건 꺼려진다.

불명확한 지시 뒤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상사가 대단한 답을 숨겨두었거나, 아니면 본인도 잘 몰라서 일단 던졌거나. 이 모호함을 구체화해서 보고하는 것이 ‘실력’이라는데, 신도 아닌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어떻게 탁 캐치할 수 있을까. 그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선배들이 대단해 보일 따름이다.


상사에게 되묻기 전, 우리는 머릿속에서 자동 계산기를 두드린다. 질문을 하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이익’과, 자꾸 물어보면 나를 무능하게 보거나 귀찮아할 거라는 ‘비용’ 사이의 저울질이다. 내가 던질 질문이 썩 괜찮은 수준인지 스스로 검열하다가 결국 입을 닫는다.

이런 상황에서 AI는 훌륭한 도피처가 된다. AI는 수백 번 물어도 한숨 쉬지 않고 친절하게 답해준다. 내 질문이 멍청하다고 비난하지도 않는다. 덕분에 모르는 게 생기면 상사보다 AI를 먼저 찾는 것이 이미 디폴트(Default)가 되었다.


[피드백 추구 행동(FSB)]


심리학자 애슈퍼드(Ashford)는 이를 '피드백 추구 행동(Feedback-Seeking Behavior)'이라 정의했다. 개인이 자신의 성과나 역량을 평가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타인이나 업무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구하는 능동적인 행위다.

우리가 구하는 정보는 단순히 "저 잘했나요?"라는 평가 정보만이 아니다. 가장 기초적인 단계는 '준거 정보(Referent Information)'를 확보하는 것이다. 즉,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명확히 하는 지시 내용 구체화 단계다. 이것은 무능의 증거가 아니라, 업무라는 항해를 시작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도’를 확보하는 과정이다.



피드백 추구 행동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① 직접 질문(Inquiry): 단순히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는 것은 나의 사고 프로세스를 통째로 넘기는 일이다. 상사는 이를 '다시 나한테 일을 시키네'라고 느낄 수 있다. 답은 초안에 있다. 먼저 초안을 만들고 설명을 드리면서 "방향이 맞는지" 확인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렇게 하면 상사는 당신이 주도적으로 생각하며 일한다고 느낀다. 시행착오의 '비용'을 낮추고 나의 '가치'를 높이는 전략이다.


② 간접 관찰(Monitoring): 직접 묻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상황을 관찰하며 힌트를 얻는다. 상사의 표정이나 말투, 과거의 유사한 결과물들을 살피는 식이다. 다만 모니터링으로 얻은 정보는 주관적이고 왜곡될 위험이 크다. 이런건 선배들이 잘안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 왜 저렇게 말씀하셨는지 노하우를 얻을 수 있다.


'개떡' 같은 지시를 해독하느라 검색엔진과 AI 사이를 표류하는 시간은 참 아깝다.

그래도 우리는 정보를 다방면으로 탐색할 수 있다. 그냥 질문하지 말고 일한 티를 내며 질문하고 상사의 표정이나 언어습관을 잘 관찰해보면서 수수께기의 힌트를 얻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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