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회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면회 시작 전부터 중환자실 문 앞을 서성이던 부모들은, 정각이 되면 서둘러 아기에게 달려온다. 짧은 한 시간 안에 그동안 못다 한 사랑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말없이 서서 눈물을 흘리고, 어떤 이는 작은 목소리로 아기의 이름을 끊임없이 부른다.
그렇게 쏜살같이 흐른 면회 시간 한 시간이 끝나면, 나는 다시 ‘악역‘이 되어 말해야 한다.
“면회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이제 정리해 주세요.”
아기의 손을 한 번이라도 더 만져보려는 엄마의 간절한 손길과, 뒷걸음질 치며 연신 뒤를 돌아보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는 일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FCC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 짧은 만남이 그들에게 얼마나 가혹한지 알기에 나의 안내에는 늘 미안함과 아쉬움이 섞여있다.
미국의 신생아 중환자실 케어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로, 가족 중심 케어 (family centered care)라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다.
부모가 하루 종일 아기에게 접근할 수 있고, 가능한 아기의 돌봄에 많이 참여하는 것.
24시간 내내 부모가 아이의 곁을 지키며 캥거루 케어를 하고, 직접 먹이고, 아기의 변화를 경험하는 것.
부모가 외부인이 아닌 ‘치료의 파트너‘로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
이것이 내가 꿈꾸는 가족 중심 NICU(신생아 중환자실)이다.
하지만 현실의 NICU는 조금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미국과 같은 가족 중심의 케어를 제공함에 있어서 우리나라 병원의 물리적 환경과 인력의 한계라는 벽은 여전히 높다.
간혹 누군가는 무심하게 묻기도 한다.
“신생아 중환자실. 그냥 기저귀 갈아주고 밥만 먹이면 되는 거 아니야? 뭐가 그렇게 긴급하다고 면회시간이 짧아?”라고.
하지만 이곳은 그저 평화로운 곳이 아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는 중환자실이다.
에크모(ECMO, 체외막산소발생장치)라는 기계가 아기의 가느다란 혈관에 연결되어, 기계의 회전수와 산소 수치 하나에 아기의 생명이 실시간으로 매달려있는 긴박한 현장. 의료 선진국에선 이런 에크모 환아 한 명을 위해 간호사 세 명이 붙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위중한 아이를 보면서도 동시에 옆 침대의 또 다른 중환자까지 한 명의 간호사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부모에게 건네는 “면회 종료”라는 말은, 단순히 업무를 끝내기 위함이 아니다.
아이의 생명줄과 다름없는 수많은 라인과 장비들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다음 투약과 처치를 이어나가야 하는 또 다른 사투의 시작을 의미한다.
가족 중심 케어라는 이상을 실현하고 싶지만, 지금 당장은 아이의 ‘생존’이라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간절한 권리를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쁜 것이 우리 의료 현장의 실상이다.
그래서 나는 면회 종료를 알리는 미안함의 무게만큼,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부모님과 만날 수 있게 하겠다는 다짐으로 아이들을 돌본다. 결국 이 미안함을 잊지 않는 것부터가 변화의 시작이라 믿는다. 미안함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 아이에게 부모의 온기가 얼마나 절실한지 잊지 않는 이 안타까움이 모여 우리나라 의료계의 시스템을 바꾸는 목소리가 된다면 좋겠다.
언젠가는 “면회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라는 말 대신, “오늘 밤도 아기 곁을 편히 지켜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