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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Dec 25. 2019

티 나게 일하는 사람

티 나게 일하거나 뛰어나게 일하거나

전 직장에서 기억에 남는 인물 중 한 명을 꼽으라면 단연 대리 A이다. 그녀는 나와 같은 회사는 아니었으나, 같은 그룹사의 총무팀에 일하고 있었고 우리는 같은 층에서 일했다. A대리에 대한 소문은 대단했다. 일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는 말을 넌지시 들었고, 상사 역시 그녀를 대단히 신뢰한다고들 했다.


소속은 달랐으나 그녀와 내 책상의 거리는 불과 500M 남짓이었다. 나는 종종 그녀가 업무 중에 수화기에 대고 다른 직원에게 업무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는 했다. 남의 얘기를 엿듣기 위해 들은 것이 아니라, 그녀의 목소리가 그만큼 우렁찼고 때로는 듣는 이가 당황스러울 만큼 상대방을 질타했다.


여느 날과 같이 그녀는 수화기 너머의 상대에게 언성을 높였다. 으레 총무팀이라면 지점 직원들이 잘못 올린 경비 처리를 반려하기 위해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녀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A대리 지점에 전화하는 거 아니야."

"아......"


나는 황당함에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A대리는 종종 '티 나게 일하기' 위해 바로 옆 부서나 건너편 자리의 사람에게도 일부러 전화를 걸어 업무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다른 총무팀 직원을 통해 듣게 되었다. 고작 몇 걸음 떨어진 사람에게 전화를 걸만큼 그녀는 '보여주기 식 일하기'에 매진했다.


직장생활에서 보여주기 식 일하기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A대리의 업무 스타일은 종종 업무 효율보다는 그냥 보여주기에 그치는 것 같았다. 실상을 알고 보니 황당무계했다. 고작 몇 걸음 옆에 앉은 그녀가 걸어오는 전화를 후임이 매번 쩔쩔매며 받는 것도 우스꽝스러웠다. 



일하는 것을 슬기롭게 티 내는 것은 중요하다. 때로는 묵묵히 일만 하는 직원들은 상사로부터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또는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는 평을 듣기 때문이다.


(티 내지 않고 열심히 일만 하는 한 없이 작은 존재들은 때로 서글프다.)


무엇보다 뛰어난 업무 처리 능력으로 두각을 나타낸다면 가장 좋은 케이스이다. 차선책으로는 업무적으로 꾸준히 언급되어 이름을 각인시키는 법도 있다. 예를 들어 회사의 주요 임직원에게 꾸준히 업무 보고 메일을 보내는 직원이 있다면 이름이 기억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가 일을 잘하는지 아닌지와 관계없이 친숙한 이름은 플러스 요인이 된다. 물론 이런 업무를 맡는 사람은 직장 내에서 소수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종종 월간 보고를 서로 하겠다며 작은 실랑이를 벌이는 직원들을 본 적도 있다. 모 캐피탈 지점에서 일할 때, 후임이 대부분 정리해놓은 일을 굳이 본인이 업무 보고하겠노라 매번 우기던 선임이 있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이 해 놓은 일에 이름만 올리려고 하는 얌체들도 있기 마련이다. (사회 초년생이던 나는 그 일을 왜 서로 하겠다며 나서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여전히 눈치가 없다. 천성이 눈치 없는 사람이다.) 


어쨌거나 업무를 하면서 적당한 티내기는 필요하다. 특히나 자신의 리더가 당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면, 그래서 본인이 생각한 것에 비해 좋지 않은 인사고과를 받았다면 한 번쯤은 업무 스타일에 대해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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