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샀는지 모를 반쯤 남은 애호박, 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돼지고기 한 팩. 푸석푸석해진 어묵, 새송이 버섯은 벌써 노란 옷으로 갈아입으려 했어요. 한때는 신선했던 재료들이 조금은 무심한 시간 속에서 시들어 가고 있었답니다.
한꺼번에 조리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정성스러운 방법. 전을 부치기로 했어요. 전은 우리 집 청소년도, 신랑도 고소한 냄새를 맡고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와요. 부치는 따끈한 전을 손으로 집어 먹으며 엄지척을 해 보이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오늘도 참 잘했어요.
엄지척 칭찬받고 싶어 전을 시작해봅니다.
어묵은 살짝 따뜻한 물에 넣었다가 건져내고, 계란물에 적셔 부쳐야 촉촉하면서도 담백해요. 호박은 부침가루와 계란물을 입혀야 바삭한 식감이 살아나고, 새송이버섯은 부침가루에 카레가루를 살짝 섞어야 깊은 풍미가 더해진답니다.
앞다리살은 후추를 아낌없이 넣어야 제맛! ‘이 정도면 너무 많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후추를 듬뿍 뿌리고, 맛소금과 미림을 더한 계란물에 적셔 부침가루를 입혀 부치면, 한입 먹는 순간 엄지척이 절로 나와요.
프라이팬 두 개를 동시에 돌리며 전을 부치니, 손이 바쁘게 움직였답니다. 전을 다 부치고 나니 손이 큰 저는 어느새 전집 수준으로 한가득 만들었네요. 그래도 괜찮아요. 도시락도 싸고, 방학한 아이들 반찬으로 내놓으면 어느새 접시가 비워질 테니까요.
기름 자국이 남은 가스레인지를 닦으며 오늘의 수고를 정리했습니다.
냉장고를 비운 만큼 마음도 가벼워지고, 뿌듯함이 스며든 저녁이었어요.
내일 도시락 반찬은 모둠전 한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