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이후, 삶과 시대를 지나며
어머나, 제가 애정하는 브런치에 2026년 3월 말이 되어서야 올해 처음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일기처럼 쓰다 보니 다소 두서가 없을지 모르지만, 오랜만에 기쁜 마음으로 몇 자 적다 잠에 들려 합니다.
2025년은 대통령 선거 캠프에서 바쁘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승리의 안도감을 채 누리기도 전에, 저는 다시 격렬한 신작 작업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와중에도 틈이 나면 예술정책에 필요한 것들을 메모하는 습관은 여전했습니다.
2025년 연말에는 학고재 개인전을 위한 작품 설치와 프리뷰로 전시회의 막을 올렸고, 2026년 1월 7일 드디어 개인전 《Eternal Becoming》 오프닝.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옆, 경복궁 앞. 학창 시절부터 가장 좋아했던 학고재.
오프닝 날, 샴페인과 와인, 그리고 빛나는 관객들 속에서 작품과 함께하는 시간은 특별했습니다. 작가에게 전시 오프닝은 작업실의 고독과 작품이 사람과 만나는 순간입니다. 그날 저는 동료와 스승, 평론가들, 그리고 오래 보고 싶었던 얼굴들과 같은 공간에서 숨을 나누었습니다.
저는 2021년 말부터 2024년 초까지 뉴욕대학교에서 방문학자와 연구교수로 딸과 함께 미국에서 만 3년을 보냈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한국 핸드폰의 연락처가 모두 삭제된 일도 있었고, 전시 초대 연락을 드리지 못한 분들께는 늘 마음 한켠의 아쉬움이 남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못보고 지냈던 초등학교(국민학교) 시절 친구가 학고재 전시를 잘 보았다며 남긴 짧은 메모가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작가라는 일은 어쩌면 공적인 책임을 동반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꾸준히 작업과 전시를 이어가며 잃었던 인연을 다시 만나기도 하고, 서로 다른 삶을 살다가 잠시 스쳐 지나가는 만남 속에서도 저는 여전히 연결을 느낍니다.
2024년은 남편의 국회의원 선거 경선과 그 이후의 시간 속에서, 개인과 사회의 격변을 동시에 겪은 해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문화예술과 정책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체감했고, 대선 캠프에서 활동하며 2025년 6월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했습니다.
그 사이에서도 저는 두 번의 개인전을 통해 작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삶이란 개인의 시간과 사회의 시간이 포개어 흐르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다시, 이곳에 글을 남깁니다.
요즘 저는 ‘인류애’를 자주 생각합니다.
인류애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감정에서 시작됩니다. 잠깐의 시선, 이해하려는 마음, 그리고 서로를 향해 열려 있는 작은 틈.
저는 인간을 그리기보다, 인간과 인간 사이를 그리며 인간을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제가 그려온 별들은 모두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별볼 일 없다고 말해지는 세상 속에서도, 사람 인(人) 자처럼 서로 기대고 서 있는 존재들. 제 캔버스를 가득 메운 별빛은 결국 사람의 형상이고, 관계의 신호였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들— 관계, 감정, 그리고 서로를 향한 신호들. 별을 그려온 시간 역시 결국 같은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존재들이 서로를 인식하고,
때로는 부딪히며, 마침내 하나의 장을 이루는 것.
인류애란 새롭게 만들어내는 감정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연결을 알아차리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내일, 광화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입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과 목소리, 그리고 그를 향해 모이는 마음들. 저는 그 장면을 떠올리며 상상합니다.
만약 그 거대한 무대 위 한 장면에, 순수미술이—한 작가의 회화가— ‘인류애’라는 이름으로 함께 호흡할 수 있다면 어떨까. 수만 명의 사람들 위로 별빛처럼 펼쳐지는 이미지. 서로를 향해 열려 있는 존재들의 장면. 음악과 빛, 그리고 회화가 하나의 감각으로 이어지는 순간. 그때 우리는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K-팝만이 아니라,
K-아트 또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국민을 움직이는 힘은 스타의 소리와 퍼포먼스에서 만이 아니라, 순수예술의 이미지와 사유, 그리고 보이지 않는 감정의 층위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AI와 기술이 급속히 확장되는 시대,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왜 연결되어야 하는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저는 여전히 그 답을 예술로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 또한 아름다워질 수 있고, 개혁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혐오가 아닌 신뢰로,
외면이 아닌 참여로,
모두가 사랑할 수 있는 사회와 지도자를 향해.
저는 그 가능성을 여전히 믿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또 하나의 《Eternal Becoming》이라고 생각합니다.
2026년 3월, 저는 이렇게 다시 시작합니다.
학고재 공간에서의 전시는 3월 7일 일단락되었지만, 작품들은 아트페어들에서 또 다른 별들을 만날 것입니다. 6월 화랑미술제 그리고 특히 9월 프리즈가 기다려집니다.
지난 2월 한 달간 도심의 미디어, 대형 전광판으로 확장되었던 저의 회화는 전시 도록으로 남아 미술관과 서점에서 다시 관객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저의 정책 연구 역시 변함없이 계속됩니다.
한 작가님의 말씀, “작가들을 위해 사명감을 가져주세요.” 그 말씀하시던 그 눈빛, 제 안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나 혼자 잘나가는 작가가 아니라,
미술계와 예술계에 꼭 필요한 사람,
그리고 끝내 해내는 사람으로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