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티, 다시 인간을 묻다

압축 성장의 시간을 지나, 우리가 다시 붙잡아야 할 감각에 대하여

by 성희승

잠은 잘 잤습니다. 오랜만에 일기를 쓰고 잠든 기분이라 더 깊게 쉰 것 같습니다. 어제의 문장들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로 아침에 눈을 뜹니다. 다시 그 글을 들춰보며 조금은 상쾌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포도 몇 알과 사과 반쪽, 그리고 커피 한 잔. 그 단순한 아침을 곁에 두고 천천히 생각을 이어갑니다. 이렇게 한 시간을 보내고, 침대에 다시 몸을 기대어 30분쯤 더 쉬었습니다. 생각과 휴식이 번갈아 흐르며 몸과 마음이 서서히 깨어나는 시간입니다.


집에서 작업을 하면 좋은 점이 있습니다. 잠들기 전에도, 눈을 떴을 때도 가장 먼저 내 그림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 그 사이에서 생각은 끊기지 않고 이어집니다. 하루가 끝나도 작업은 끝나지 않고, 다음 날의 시작도 이미 그 연장선 위에 놓여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지금처럼 장흥까지 운전해 작업실로 향하는 시간도 나쁘지 않습니다. 거리가 생기면 생각은 조금 더 정리되고, 마음은 오히려 또렷해집니다. 어딘가에서 들은 말이 떠오릅니다. 거리를 두고 일을 하면 사람이 조금 더 분명해진다고. 어쩌면 물리적인 거리만큼 생각의 거리도 함께 생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과 작업실 사이를 오가며 생각과 감각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작업실로 향할 준비를 합니다. 작품 리스트를 정리하고, 11시부터는 작업실 일부 공사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오늘은 귀한 분을 한 분 맞이하게 됩니다. 어제의 생각이 오늘로 이어지고, 오늘은 다시 작업으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또 하루가 시작됩니다.


저는 한때 건국대학교에서 ‘휴먼이미지’를 가르쳤습니다.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인간은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질문하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그 질문을 떠올립니다. 우리는 어떤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르네상스는 인간을 다시 발견한 시대였습니다. 신 중심의 세계에서 인간으로 시선을 옮기며 인간의 존엄과 가능성을 말하기 시작했던 순간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시기를 지나고 있을까요.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이곳에서.


한국은 전쟁 이후 폐허 위에서 빠르게 성장해 왔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산업과 도시, 그리고 문화가 함께 확장되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이루었고, 그만큼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방식이 있습니다. 경쟁하고, 버티고, 살아남는 방식입니다.


그 방식은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소모시키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 시간은 저보다 앞선 세대의 것이었습니다. 전쟁 이후를 통과한, 특히 60년대생까지의 세대입니다. 저는 1977년생, 97학번입니다. 제 학번부터는 거리의 데모가 사라졌고, 선배들과 같은 사회를 살고 있지만 그 시간을 통과한 방식은 많이 달랐습니다.


빠른 성장만큼이나 세대 간의 간극도 점점 벌어졌습니다. 80년대 이후의 세대는 이전과는 다른 감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문화를 향유하는 세대이면서 동시에 그것에 굶주려 있었고, 빠르게 반응하고 환호하며, 표현에도 거침이 없었습니다. 감정과 생각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사람은 여전히 역할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속도와 효율이 앞서는 구조 속에서 관계는 때로 기능과 도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 AI와 기술은 우리의 언어와 이미지를 빠르게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이미지는 넘쳐나고, 표현은 쉬워졌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문득 멈춰 서게 됩니다. 인간성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는가. 연결은 많아졌지만, 이해는 정말 깊어졌는가. 보이지 않게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바라보고 있는지. 어쩌면 지금은 다시 인간을 생각해야 하는 시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인간을 그리기보다 인간과 인간 사이를 그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그려온 별들은 어쩌면 그 사이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를 향해 빛을 보내는 존재들, 각자의 자리에서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선으로 이어져 있는 존재들. 제 캔버스를 채운 별빛은 결국 사람의 형상이고 관계의 신호였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들—관계, 감정, 그리고 서로를 향한 신호들.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존재들이 서로를 인식하고, 때로는 부딪히며 하나의 장을 이루는 것. 인류애란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어제는 문득 광화문을 떠올렸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장면 안에서 연결되는 순간. 그 흐름 위에 회화도 함께 놓일 수 있을까. 그 질문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작업으로 돌아갑니다. 어제 생각한 것들을 오늘 조금 더 이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