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엔 잘될 거야 아마두

너도 나도 우리 모두 파이팅

by 미지

카이스트는 매 학기 기숙사 이동이 있다. 나는 기존에 살던 1인실을 신청했으나, 신입생 우선선발이어서 다른 2인실을 배정받았다. 대학원생까지 되어서 룸메이트와 생활해야 한다니! 처음 결과 창을 열어보고는 망연자실 가득한 마음이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니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도 누군가 마치 강아지처럼 나와 공존하는 존재가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편해지기도 핬다.

한창 봄 날씨가 될 것 같던 어느 날, 하필이면 내가 이사를 하기로 한 날, 대전엔 난대 없이 함박눈이 내렸다. 2월 말에 이렇게 펑펑 눈이 내릴 줄이야.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눈을 맞으며 짐을 옮길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

미지야, 눈 오는 날 이사하면 부자 된대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건 엄마와의 통화에, 엄마는 눈 오는 날 이사하면 부자 된다며 앞으로 일이 잘 풀릴 건가 보다 이야기를 하셨다. 연구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춥다고 투덜거리며 이사를 하던 와중 마주한 내 새로운 방은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다. 이전 기숙사는 해가 잘 들지 않아 어둡고, 구석진 곳에 있어 이동이 불편했는데, 새로운 기숙사는 밝고 넓어 마음이 더 편한 느낌이었다.


시간표도 원하는 대로 짰겠다, 방도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럽겠다, 모든 게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마주한 개강 전 마지막 연휴. 삼일절에 산에 오르기로 했다.


최근 유퀴즈에 나와 제2의 두쫀쿠로 유행이 된 관악산이었다. 사실 유행 이런 거 잘 따르지 않는 편이지만, 우연히 지인과의 대화 속에서 나온 등산에 마음이 혹 했다. 개강이라는 큰 일을 앞두고 있거니와 주변 사람들이 다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달까.

나는 어릴 적부터 “다시 내려올 걸 왜 올라가냐”는 아버지의 철학 아래 여름휴가는 매번 산이 아닌 바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연 20여 년을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살면서 등산을 언제 했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관악산은 20살 때 한번 서울대 공대 입구에서 등반을 시도하다 중도 하차하였으며, 대학생 때는 학교 뒷동산인 안산도 동아리 사람들과 가는 길에 몰래 하차하는 등, 산이라면 질색이었다. 그런 내가 관악산을 가보자는 건, 무려 정상까지 1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를 가겠다는 결심은, 세 번 빌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말을 믿고 싶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었던 것 같다.


관악산은 대부분 계단으로 되어 있어 천국의 계단을 1시간 반 하는 느낌이었다. 30분쯤 지났을까. ‘아, 이제 슬슬 집에 가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고, 다들 어쩜 저렇게 수월히 가는지, 나름 등산한다고 차려입은 내 모습이 초라해지는 듯했다.


처음엔 호기로웠으나 금세 나를 지나쳐 내려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그저 부러웠고, 차오르는 숨에 주변 풍경을 살필 새도 없었다. 함께 간 지인이 “여기 경치 너무 좋다”라고 해도, “난 그걸 볼 겨를이 없어”라고 대답하며 바위 옆 밧줄에 몸을 의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정상에 가서 야무지게 인증샷도 남기고, 주섬주섬 싸 온 간식도 먹고, 소원도 빌었다. 신기하게도 내려가는 길은 너무나 수월했다. 내려오면서 서로 이런 말을 했다.

나 혼자였으면 절대 못 해냈을 것 같아.

사람들은 흔히 마라톤이나 달리기를 인생에 비유하곤 한다. 근데, 둘 다 해본 입장에서, 등산이 더 비유적으로 맞는 표현인 것 같다. 두 가지 다 어떤 도달점이 있다는 건 동일하지만, 등산은 내려오는 길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인생도 어느 정점을 찍고 나면 내려오는 길이 펼쳐진다. 올라온 만큼 내려가야 하기에 두려움이 앞선다. 하지만 한번 와 본 길이기에, 곁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올라갈 때만큼 두렵지는 않다. 그리고 비로소 하산을 할 때에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출발했던 지점이 눈앞에 보이면 “다 왔다!”라는 생각에 신이 나 가게 되고, 도착하고 나면 ‘별거 아니었네’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산 중에서는 가장 낮은 산을 정복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내가 우스울 수도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오르막길에서는 힘이 들고 벅찰 때가 있겠지만, 오르고 나서 ‘그래도 좋았다’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느님, 하나님, 부처님 등의 신에게 매달린 다음 개강을 맞이했다. 대학원에서 두 번째 학기인데 막상 생각보다 ‘별거 없네’ 싶었다. 소원이 통했나 보다.


출근하는 길에 어쩌면 개학이라는 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개강하기 전까지 이렇게 해야지’, ’ 이번 학기에는 좀 더 잘해봐야지 ‘, ’ 다음 학기에는 이런 걸 해봐야지 ‘. 3월, 그리고 9월. 이런 작은 기준점들이 바다에 떠 있는 부표처럼 스스로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고, 달성하지 못한 새해 목표들을 다시금 도전하게 해주는 힘을 주는 듯하다.


회사에 다닐 때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조직이나 개인이 전략적 목표를 얼마나 잘 달성하고 있는지 측정하는 정량적인 지표)를 작성하라고 했을 때 ‘이런 걸 왜 사원 개개인이 작성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분기별로 스스로 정해놓은 지표가 있어야 자신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거나 혹은 계속 열심히 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구나 싶었다.


오늘, 개강날 떠 있는 이 달은 우리나라에서 36년 만에 정월대보름과 개기월식이 겹치는 특별한 밤이라고 한다. 우연한 것들이 모여 기대 이상의 더 나은 것이 되어가는 요즘이다. 수많은 대학(원) 생들이여, 너도 나도 우리 모두 파이팅. (모두 기 받아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