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술가는 그림의 주제를 어떻게 선택하나요?
저도 얼마 전에 그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있었는데요. 저는 지금 발달 장애인들을 위한 예술가 양성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배우는 제자들의 그림 실력이 적절한 단계에 이르면 그림의 주제를 한 두 가지 정도로 정해서 그리는 예술가 초기 단계로 들어갑니다. 한 제자가 이 단계에 진입하기 위해 제가 이 친구의 그림 주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면서 예술가들은 과연 그림의 주제를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저로 예를 들면, 저는 인간이 그림의 주제입니다. 지금 심리학 공부로 저의 그림의 시간이 과거에 머물면서 작은 인간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저는 사실 인간의 감정을 몸(누드)으로 표현하는 몸의 언어 시리즈가 제 인간 그림의 시작입니다. 이때 그린 인간의 붉은 몸은 열정과 소멸의 상징입니다. 결국, 자신을 알고자 하고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한 공부가 지금의 그림에 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제가 탐구하고 싶은 것이 그림의 주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2. 심리학 공부로 그림의 시간이 과거에 머무르고 있다고 하셨는데 이 말의 의미가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말하자면 제가 그림 그리는 순간은 아이로 되돌 간다는 걸 뜻합니다. 그래서 작은 인간인 아이들을 그리고 있고요. 심리학 책을 읽고 나 자신을 공부하면서 삶의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왜 이리 어리석은 선택들을 반복했었던가. 어느 순간 예전에 불안한 20대를 보내면서 선택했던 결과들이 쓰나미처럼 내 삶에 밀려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한 대를 맞고 두 대를 맞고 이제 좀 잠잠해졌을까 하면 연타로 밀려들어 만신창이로 너덜너덜해져 있는 저를 발견했었습니다. 자신을 모르고 한 선택들에는 후회가 많습니다. 그리고 선택들의 기준은 어린 시절에 배웠던 감성에서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감성으로 돌아가 그림을 그린 29명의 내면아이 시리즈가 탄생되었습니다.
3. 내면아이가 무엇인가요?
내면 아이란 신체적 성장과는 달리, 정서적으로 부모에게 상처를 받았던 어린아이의 모습을 그대로 성인이 되어서도 가지고 있는 것을 바로 내면 아이라고 합니다. 부모의 엄격한 혹은 가혹한 양육 방식이 아이의 사회적, 심리적 정서 발달에 나쁜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두뇌 구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아동 학대와 그에 준하는 스트레스가 아이의 대뇌 전두엽과 편도체 등의 뇌부위를 물리적, 해부학적으로 변화시키고 그와 연관되어 불안과 우울 등의 병리학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뢰 가능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많은 연구 결과들이 성인이 되어하는 선택이나 행동, 증상 등이 어린 시절의 환경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4. LIKE 시리즈에 대해 간략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인간은 상처 입은 내면 아이를 치유시키고 자신이 희생자라는 피해 의식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성장한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에서 환상을 꿈꾸며 함께 놀던 인형은 내가 되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인형은 언제나 예쁘게 옷을 입고 웃고 있지요. 하지만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만 보여주는 인형의 모습이 불편하게 여겨졌습니다. 유난히 여성들에게 이상적인 외모와 미소를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로 인해 아름다운 인형에 감정이입이 되었던 걸까요. 어느 순간 나의 감정은 인형처럼 웃는 표정을 가진 가면에 가려져 진정한 내면의 감정을 잃어버리게 된 것 같습니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도 사랑받기 위해 언제나 웃었던 그때의 나의 감정을 경직된 자세와 웃지 않은 인형 그림으로 표현하게 된 것입니다. LIKE 시리즈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인형 시리즈는 인형을 통해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유희 즉, 일종의 사회적 명령으로부터 벗어난 감정의 해방과 자유를 즐기는 인형놀이입니다.
5. 인형놀이 시즌 1에서는 어떤 시리즈가 들어가 있나요?
동화 속 주인공을 상상해서 그린 LIKE 시리즈, 그 아이들의 무의식을 발현하고 그린 추상화 멍 때리기 시리즈, 종이 인형의 옷을 오려 인형의 얼굴을 그린 너의 이름은 시리즈가 있습니다.
6. 너의 이름은 시리즈에 대한 간략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름은 사람, 물건, 생각, 개념, 장소 등을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 부르는 말입니다. 낯선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가장 먼저 알게 되는 것이 바로 부모가 만들어 준 이름입니다. 이름은 첫인상만큼 사람들이 한 사람을 인식하는데 중요한 시작점이 됩니다. 그러므로 태어날 때부터 부과되는 자신의 이름은 평생을 걸쳐 나를 따라다니는 자아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남아선호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붙여준 나의 이름은 남자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소원이 담긴 이름이었습니다. 그 염원이 통했는지 부모님은 곧 남자아이를 품에 안아 나의 이름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얼마 뒤 내 이름은 내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이름으로 한 번 더 바뀌게 됩니다. 부모님이 아닌 제삼자가 서류에 올리기 위해 즉석에서 만든 내 이름은 지금까지 공식적인 나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자신감과 자존감의 결핍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의 이름은 자신의 감정과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현재 작가 활동을 하며 만든 아티스트 차미는 어린 시절 나의 별명이기도 했지만 나를 부르는 가장 마음에 드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무엇으로 불리든 나의 영혼이 아름답고 건강하다면 나의 이름은 더 이상 나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이름이 무엇이든 나는 불이기도 물이기도 바람이기도 흙이기도 하니까요.
7. 지금 현재 인형놀이 시즌 2를 시작하셨죠? 간략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오뚝이의 자동복원 특성은 성공하고 역경을 극복하며 불행을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상징합니다. 인형 놀이 시즌 1에서의 인형은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속 주인공의 모습에 나 자신을 투사했다면 시즌 2의 인형은 자기 스스로 오뚝 일어서는 성질을 가진 오뚝이 인형에 나를 반영시켰습니다. 시즌 1의 LIKE 시리즈에서 인형의 무표정한 얼굴은 언제나 예쁘게 웃고 있는 여성 인형의 표정에 대한 해방을 의미하며 얼굴의 시선이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모습은 현실은 동화 속 환상이 아니며 자신이 살고 있는 지금을 바라보자라는 다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시즌 2의 인형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는 인간과 닮아있는 오뚝이 인형의 모습에서 연민을 느꼈는데요. 그리고 실제로 제가 무의식적으로 나의 감정을 타인에게 이야기할 때 두 눈의 시선이 측면을 바라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근래에 지인이 이야기를 해주어 알았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오뚝이 인형처럼 불행에 넘어져도 스스로 오뚝 일어나라는 의미로 인형놀이 시즌 2에서 나만의 고유한 캐릭터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시즌 2 인형은 16가지의 다른 색 옷을 입은 오뚝이 인형 그림과 16개의 나무 오뚝이 그리고 나무못 인형들과 함께 인형 놀이를 할 예정입니다.
8. 앞으로의 작가 활동에 대해서 한 말씀해 주세요.
올해 개인전을 4번 하면서 체력적으로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었는데요. 앞으로는 체력적으로나 내면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지면서 시즌 2 인형놀이를 좀 즐기려고 합니다. 그리고 오뚝이처럼 다시 벌떡 일어서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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