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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림창고

Margarita Teresa of Spain

작은 인간 프로젝트 세 번째 이야기

by 미지수

프라도의 공주


Margarita Teresa_마르가리따 떼레사 (1651.7.12-1673.3.12)


스페인어 발음으로 마르가리따 떼레사는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와 그의 조카딸이자 두 번째 왕비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마르가리따 테레사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외숙부 레오폴드 1세와 결혼이 결정되었고 아버지인 펠리페 4세 왕은 마르가리따가 성장하는 모습을 오스트리아 궁정으로 보내기 위해 자신의 궁정 화가인 벨라스케스에게 마르가리따의 모습을 그리도록 명령하였습니다.


Las meninas.jpg 그림 1_Las Meninas (1656)_화가 벨라스케스_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스페인의 국왕인 아버지 펠리페 4세와 외할아버지 페르디난트 황제 3세는 그녀를 매우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작은 천사로 불리며 스페인 알카사르에 있는 왕비의 방에서 많은 하녀와 하인들에게 둘러싸여 궁정의 엄격한 예절에 따라 양육되었고 좋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림 1에서 보이듯이 그녀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유명한 그림 [라스 메니나스_시녀들]의 중심인물입니다.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 그녀는 5살이었으며 후대에 이 그림은 화가 피카소에게 영감을 주었고 피카소는 1957년에 이 패턴의 40개 이상의 변형을 만들었습니다.



그림 2_Infanta Margarita Teresa (1660)_화가 후안 바티스타 마르티네즈 델 마조_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그림 2 인판타 마르가리따 떼레사는 이전에는 벨라스케스의 작품으로 여겨졌으나 그의 사위인 화가 후안 바티스타 마르티네즈 델 마조의 걸작 중 하나입니다. 과거 귀족들의 결혼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녀가 속해있는 합스부르크 가문은 잦은 근친혼으로 순수 혈통을 보전시켜 그들의 영토를 유지하려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는 가문에 큰 해를 미치게 되었습니다. 근친혼으로 인해 이후의 합스부르크 가문의 사람들은 뇌전증, 언어 장애, 정신 지체증 등의 이상 증상에 시달렸으며 영아 사망률 역시 매우 높았습니다. 궁정 화가들은 그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유전병으로 나타난 증상들을 감추기 위해 그림을 미화하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보고 있는 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려진 마르가리따 떼레사의 진짜 모습은 알 수 없겠지만 나는 그녀의 아름답고 과장되게 부푼 드레스를 입은 인형 같은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고 그녀의 삶을 조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림 3_Margarita Teresa (대략 1664)_화가 알려져 있지 않음_오스트리아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소장

인간은 태어나고 죽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경험하게 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운명 속에 살아야 하는 그녀의 삶은 겉으로 보기엔 모든 이에게 기쁨이 되어 행복하고 부유하며 화려했지만 그녀는 삶을 제대로 알기도 전 20대 초반의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나이 많은 외숙부와의 정략결혼을 하고 자신의 고국을 떠나 오스트리아에서 생활하면서 결혼 생활 6년 동안 4명의 아이를 출산하며 단 하나의 아이만 살아남는 경험을 합니다. 그녀는 과연 여러 역할이 아닌 자신으로서 존재했던 순간이 있었을까요. 어린 시절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진 사랑스러운 그녀는 점점 영혼이 사라지는 모습이 되어 갑니다. 물론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 따라 초상화의 분위기도 바뀌겠지만 역변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그녀에게서 나는 깊은 연민을 느낍니다.





아티스트

차미


자료_프라도 미술관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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