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시작

슬픔도 삶의 일부

by 서윤

오래전 내가 20대시절 ' 아들과 딸 ' 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될 때 누군가 나를 모티브로 글을 썼나 할 정도로 몰입해서 드라마를 본적이 있다.


쌍둥이 남매를 중심으로 삶과 사랑 차별이라는 주제를 다룬 드라마를 보면서 그 당시에 나는 나만 그런게 아니라 다른 가정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에 위로를 받기도 했었다.


나는 친조카와 4일차이로 안방과 건넌방에서 태어났는데, 내 위로 언니 6명에 조카 한명까지 내리 7명의 여자가 태어나고 나보다 4일 먼저 태어난 사내아이는 나에겐 조카지만 우리 집안에선 장손이고 아들이었으니 얼마나 경사스런 일이었을까 ?

4일후에 내가 울음을 터트리고 세상에 나왔을 때 내 존재는 미움이었다.


작은집에 양자를 보내기 위해 아들이 필요했다고 나까지 딸 7명을 낳은 엄마는 내가 태어난지 3일만에 나를 뒷동산에 버렸었다고 했다.

내가 울음을 그치지 않아서 다시 데리고 와서 길렀다는 엄마는 속상한 날이면 녹음기처럼 같은 이야기를 무한 재생시키시곤 했다.


남여 차별이 유난히 심한 우리 사회에서 7번째 딸은 말이 좋아 딸부잣집 막내딸이지 실상은 원치않는 구박덩어리일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축복과는 거리가 있는 운명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나는 기억력이 좋은건지 너무 일찍 철이 들은건지 모르겠지만, 다섯살때 이미 나 스스로 나를 지켜야 한다는 걸 알았다.

다섯살 어느날 4일 먼저 태어난 조카랑 싸움을 했는데, 가차없이 내 뺨을 후려치던 엄마의 손과 매서운 눈은 내가 60살을 바라보는 지금도 너무나 생생해서 아직도 가슴 한켠에 고스란히 그 아픔이 고여있음을 확인한다.


" 니 까짓게 감히 누굴 건드려 "


그날 엄마에게 맞으면서 들은 그 한마디는 옹이가 되어 박혀 있고,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나의 기억 저장고에 갇혀있다.

나는 딸이 아니라 원수였고 니 까짓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존재였다.


그랬던 내가 엄마를 13년 모시고 살면서 그 또한 나의 몫이라는듯, 나는 시도때도 없이 응급실로 중환자실로 입원실로 뛰어다녀야 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49제가 끝난 뒤에 논두렁에 앉아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는것도 나 혼자였고, 그날 나는 유품만 태운게 아니라 내 마음 일부도 태우고 있었다.


" 왜 나에게 그토록 매정하셨냐고 꼭 그래야만 했느냐고 " 울고 울었다.


아들과 딸, 우리네 삶에 너무나 진득하게 묻어있는 차별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 삶을 이해할 수가 없을것이다.

엄마에게 내가 우선시 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커다란 상처를 끌어안고 산다는 건 슬픔과 고통이다.


살면서 나는 나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만날때면 진심을 다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삶이 정말 힘들 때 누구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따듯한 마음으로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아주 커다란 위안이 된다는 걸

내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착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간절히 원했었기 때문에 힘든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내가 위로를 받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세상에 나만 힘들고 나만 외로운 게 아니라는 걸

나는 나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안아주어야 한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있다고 말하는 순간 내 아픔이 작아지기도 한다.


ㅡ 오늘도 나는 책을 읽는다.

내 상처를 희석시킬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책이라는 믿음으로 < 정현 >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