곪아가는 마음 1

외면

by 서윤

곪아가는 마음 1


우리집이 가난했다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고, 충분히 받아들이고 집안 형편에 맞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집은 大農 (대농)이었고, 부모님은 딸자식도 배워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계신 분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내게 가혹한 엄마가 원망스럽고 내 마음은 점점 더 곪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친구들은 교복을 맞춘다고 시내를 다녀왔다면서 자랑을 하는데, 나는 묵묵히 엄마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입학식이 다가오고 엄마는 이 집 저 집에서 낡은 교복을 얻어오기 시작하셨다.

색깔도 안 맞고 크기도 각각 다른 교복들은 내 몸에 들어왔다 나가길 반복했다.



내 기억에 언니는 동복, 춘추복, 하복이 각각 두세 벌씩에 겨울코트도 디자인별로 몇 개씩 맞춤으로 해줬는데, 막내딸인 내게는 남들이 입던 옷을 안겨주시는 게 너무 서운해서 나도 새 교복이 입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엄마의 속사포 같은 말들이 콕콕콕 박혀 들었다.



" 저 너머 니 조카 해 입히느라 돈도 없고, 끄트머리라 물려줄 동생도 없는데 무슨 새 옷 타령이야

학교 보내는 것도 감지덕지해 "



" 니년 입을만한 거 얻으러 다니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주면 주는 대로 입으면 되지 더운밥 찬밥 가릴 처지야 지금 "



난 그렇게 아래위 색깔도 다르고 맞지도 않는 교복을 입고 중학교 입학식을 했다.

새 교복을 입고 온 친구들이 부러웠고 내 모습이 부끄러워서 조금씩 날카로워지고 초라함을 가리기 위해 목소리가 커져가고 행동이 둔탁해져 갔다.



남녀공학이었던 중학교는 초등학교 세 개 학교에서 같은 중학교로 오기 때문에 다른 초등학교 학생들이 낯설었던 1학년 초

앞에 앉은 여학생이 자꾸 내 책상에 걸터앉는 게 싫어서 다툼 끝에 주먹을 날렸는데 하필 그 아이 얼굴에 정통으로 맞아서 시퍼렇게 멍이 들어버렸다.



그 여학생 아빠는 우리 학교 직원이었고, 그 일로 나는 일주일 동안 화장실 청소를 하고 반성문을 매일 써야 했다.

입학초부터 말썽이 났으니, 담임선생님은 나를 불량학생으로 치부해 버렸고,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하고 바른생활을 해도 한번 어긋난 이미지는 1학년 내내 회복되지 않았고, 담임선생님은 나를 무조건 싫어하셨다.



그 당시 나는 사춘기 시절이었고, 모든 게 다 불만에 예민하던 때라 어차피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할 바엔 삐뚤어지면 어때 식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여학생이든 남학생이든 싸움닭처럼 달려들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일진의 아이처럼 이유 없이 친구든 후배든 괴롭히고 때리고 반성문 쓰고 혼나고 그렇게 중학교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3학년이 되면서 성적이 걱정되기 시작했고 공부 잘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조금씩 내 심성도 변해가고 있었지만, 또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이 있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방향도 모른 채로 마음은 힘들어져만 갔다.



다행히 중간정도의 성적은 유지하고 있었기에 최고는 아니어도 인문계 학교 입학은 가능하겠다는 진학담당 선생님의 말씀에 조금만 더 해서 가고 싶은 고등학교에 입학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늦었지만 시험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애초에 나를 고등학교 입학시킬 마음이 없으셨던 건지 성적 따위는 궁금해하지도 않으셨고, 얼굴만 보면 방직공장에 들어가라 야간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돈도 버는 곳이란다. 니 조카 가르쳐야 하는데 시골에서 둘 다 어떻게 고등학교를 가르치느냐 그건 힘들다면서 또 내 가슴에 매질을 하셨다.



결국 나는 방직공장에 들어갔고 3교대로 일하면서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