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트럼펫 선생 존 디어스는 백인 재즈 음악가들에게 후한 평가를 하지 않는다. 자신도 백인이면서. 이제까지 나에게 들어보라고 추천한 재즈 트럼펫 연주자들은 다 흑인이다. 재즈를 제대로 연주하려면, ‘be black enough’ 이어야 한다는 말을 가끔 되뇌인다. 내가 이해하기론, ‘한’이다. 우리민족 정서에 ‘한’이란 감정. 그것과 비슷한, 흑인들이 오랜세월 겪은 깊은 좌절과 슬픔이 응축된 감정이 녹아있는 연주를 존은 말하는 듯하다.
내가 주로 듣던 트럼펫 연주가들은 둘이다. 마일스 데이비스 (Miles Davis)와 쳇 베이커 (Chet Baker). 마일스는 흑인. 쳇은 백인. 재즈를 조금이라도 들어본 분들은 마일스를 알 것이다. 모른다면, 아직 재즈를 모른다.
존은 쳇 베이커를 거의 무시한다. 쳇은 한가지 방식으로만 부를 줄 알았다는 간략한 평가가 전부다. 그에 비해, 마일스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부를 줄 알았고, 각 방식마다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극찬한다.
나도 존의 평가에 동의한다. 나를 재즈로 이끈 것도 마일스의 연주였으니까. 대학원시절 룸메이트가 마일스의 cd 를 가지고 있었다. kind of blue.
자, 마일스의 연주가 얼마나 독특한지, 속된말로 얼마나 ‘쥑이는지’, 그의 autumn leaves 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쳇의 연주는 이에 비하면 그저 나쁘지 않은 멜로디에 불과하다.
이 연주에서 마일스는 두번 부른다. 첫 번째는 원곡과 거의 비슷하게, 두번째는 제멋대로 편곡을 한 연주다. 첫 링크는 두번째의 연주만을 발췌한 비데오다. 마일스의 트럼펫연주는 0:10부터 나온다. 기가막힌 편곡이다. 어떻게 원곡에서 이런 편곡이 나올 수가 있는지.. 마일스는 천재였다. 그의 연주에는 슬픔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슬픔에 허덕이지도 않는다. 한발짝 벗어나 있다고나 할까. Cool jazz 를 시작한 사람이 마일스이니.. 슬픔과 쿨함이 어떻게 공존할 수가 있을까는 이 연주를 들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왜 재즈하면, 마일스 마일스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난, 이 마일스의 연주 곳곳에서 감탄한다. 뭐,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https://m.youtube.com/watch?v=z5j7NJjTpXg
두번째 링크는 마일스의 첫번째 연주와 두번째 연주를 다 포함한 비데오다. 첫번째 연주는 원곡에 가깝다. 그래도 편곡이 기가막히지만. 그 중간에 섹소폰연주가 있는데, 난 별로다. 기교만 있고 소울은 없는 듯 하다. 물론 그 섹소폰 연주자도 존 콜트란이란 전설적인 연주자인데, 난 그의 연주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주로 난 그 섹소폰 파트는 건너뛴다. 2:20부터 4:38까지.
이 링크로 마일스가 어떻게 원곡을 두가지로 해석하는지를 감상하시길 바란다.
2년이내에, 상대적으로 쉬운 첫번째 연주를 따라서 할 수만 있다면, 난 여한이 없겠다.
https://m.youtube.com/watch?v=dSVp_mkBF3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