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받아들이기.

또는 그보다 먼저는, 나를 알아가기

by kimsoodahl

중학교 때 첫 시험을 70점을 맞았어야 했는데.

또는 초등학교 때부터 반장을 도맡아 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어디부터 단추를 다시 꿰면 이 삶이 달라질까.


모범적이고 믿음직한 딸, 학생으로 자리 잡으면서부터 내 삶은 어떤 궤도를 올라타버린 듯하다.

물론 그 안에서도 나를 찾는 여정을 얼마든지 할 수 있었겠지만, 그 궤도 안에서 안정적으로 순항하고 있었던 나는 그런 여정을 떠날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도 못했고 그럴 용기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얼마나 안정적인 궤도를 탔느냐 하면, 대치동에서 대치동 학원가를 다니며 중학교를 졸업하고 과학고에 진학해 의대를 갔다. 매우 전형적이랄까. 지금은 과학고에서 의대진학을 못하도록 되어있다지만 그 당시엔 너도 나도 의대를 갔다.


대학교 때 사주카페가 유행이었어서 친구들과 자주 갔었다. 의대를 다닌다고 해도, 사주는 믿는다. 의사인 지금의 나도 믿는걸. 사주는 통계학이랬다. 그럼 과학이고, 믿어야지.

학교 앞 사주카페에서 듣기로 '얘는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고 나갈 수도 있기 때문에 친구들이 잘 붙들어야 한다.'라 했다. 그때 친구들이 내 팔을 붙들며 '안돼'라고 했다.

실제로 나는 '의대는 왜 의사가 되는 길 밖에 없는 거야?'라는 말을 자주 했고, 계속 일탈을 꿈꾸었다. 꿈만 꾸었다. 선천적으로 노력 부족형인 나는 지금도 꿈만 꾸는 일이 많다.

다른 학과와는 다르게 각자 듣고 싶은 수업으로 스케줄을 짤 수도 없고, 고등학생처럼 학교에서 정해주는 수업을 들으면서 지내야 하는 의대 특성상, 친구란 너무 소중한 존재다. 휴학을 하고 딴 길을 모색했다가는 수업을 하루 종일 후배들과 들으면서 외롭게 보내야 할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휴학을 하지 않고 꾸역꾸역 졸업을 했다.

그 뒷얘기도 참 사주카페에서 들었던 말이 무색하다. 나는 단 한 달도 쉬지 않고 십 년 넘게 일하며 지금 내가 졸업한 의대의 병원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 아직도 일탈을 꿈꾸며.


2016년. 자주 들어가던 인터넷 카페에서 영화 '캐럴'에 대한 극찬 글이 연이어 올라와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용이 뭔지도 모른 채. 시놉시스조차 제대로 읽지 않고 본 영화는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눈물이 주룩주룩 났다. 그 눈물의 의미는 그 당시에도 모른 채 얼마간 캐럴에 빠져 배우들 인터뷰 영상을 계속 찾아보고 원작을 찾아 읽고, 번역본으로 성미가 안차서 원서를 사서 다시 읽고 싶었던 부분을 찾아 읽고, 영화 대본을 찾아 읽었다. 한동안 그렇게 빠져들어 있었다.


그러면서 생각해보았다. 왜 이렇게까지 못 헤어 나오는 걸까.

나는 아마도 영화를 보면서도 왜 울고 있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고 배우들 인터뷰 영상을 덕질하던 순간에도 왜 그러고 있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애써 부정했을 뿐. 다른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여기고 싶었을 뿐.

나도 동성애자였기 때문이었다.

이 문장을 담담하게 타이핑하기까지 6년의 시간이 걸렸다.


내 삶은 아마 그때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나를 알게 된 것, 그리고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은 것. 그때 그 이후부터가 진짜 내 삶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