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차 대전의 뫼즈강
노 맨스 랜드(NO MAN`S LAND)
19세기 후반 무기의 발달 속도는 현기증 날 정도였다. 인류 역사상 총이 승패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최초의 전쟁은 몽골과 맘루크가 벌인 아인 잘루트 전투였다.
칭기즈칸의 손자 훌레구가 이끄는 몽골군은 1256년 아무다리아강을 건넜다. 이슬람 제국의 동방경계였다. 그들 앞에는 유명한 어사신파 산성(山城)이 버티고 있었다.
어사신파 자객들의 솜씨는 워낙 뛰어나 적장의 머리를 취하는 일을 마치 주머니 속 물건 꺼내듯 했다. 자객을 의미하는 영어 어사신(Assassin)이 그들에게서 유래됐다. 어사신이라 적었지만 공포로 읽혀졌다.
그러나 산성은 몽골군에 의해 쉽게 함락 당했다. 당시 몽골군의 파죽지세는 유럽 연합군조차 감당해 내지 못했다. 훌레구의 다음 목표는 바그다드. 당시 인구 100만 명을 헤아리던 대도시였다.
신(바그)이 주었다(다드)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도시, 아라비안나이트의 신비를 간직한 도시. 몽골군은 무려 17일 동안 이 도시를 약탈했다. 연전연승 안하무인의 일방적 유린이었다.
도무지 패할 것 같지 않던 몽골군에게 최초의 패배를 안겨준 것은 맘루크군이었다. 맘루크는 원래 노예들이었다. 보잘 것 없는 용병 집단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손에 들린 무기만은 특별했다.
총이라는 몽골군이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무기였다. 제 아무리 뛰어난 몽골군이었지만 화살로 총을 상대할 순 없었다.
총과 칼의 대결은 ‘무데뽀(無鐵砲)’라는 말을 낳았다. 무데뽀란 앞뒤 가리지 않고 무모하게 행동하는 의미의 일본어에서 유래됐다. 칼을 들고 총을 가진 자, 혹은 그 무리에게 대드는 객쩍은 행위를 말한다.
1575년 5월 승승장구하던 다케다 신겐은 ‘나가시노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대패했다. 직전까지만 해도 다케다의 천하통일은 주머니 속 동전 꺼내기처럼 쉬워보였다. 도쿠가와 군에는 네덜란드 상인에게 구입한 총(鐵砲)이 있었다. 칼만 가지고 총을 든 군대에 대든 ‘무데뽀 정신’은 엄청난 사상자를 냈다.
인류 역사의 발전은 한편 무기의 발달이기도 하다. 25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나약한 손에 돌을 쥐는 순간 주변의 맹수들은 이후 자신들의 운명이 얼마나 초라해질 줄 상상하지 못했다.
투박하던 돌은 점점 뾰족하고 날카로워졌다. 약 5천 년 전부터는 돌 가운데 박힌 금속을 뽑아내 청동기 무기를 만들어냈다. 이후 인간과 맹수의 승부는 인간 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졌다. 철기의 등장은 인간 집단 사이에도 현저한 우열을 강요했다.
다윗 시대 이스라엘이 숙적 블레셋에 매번 패한 이유도 그들의 철제무기 때문이었다. 무른 청동기 칼과 쇠칼이 부딪히면 결과는 뻔했다. 하지만 쇠칼을 든 골리앗은 다윗의 돌팔매에 무너졌다.
총에도 문제점은 있었다. 한 발 쏘고 난 다음 재장전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었다. 한발 쏜 후 한참 시간을 끌어야 했던 총이 연속으로 총알을 내뱉는 기관총으로 발달한 것은 600년 후였다. 1880년 하이럼 맥심이 발명한 기관총은 전쟁의 양상을 또 한 번 바꾸어놓았다.
1898년 영국군은 아프리카 수단에서 4만 명의 대군을 맞이했다. 전투는 5시간 만에 싱겁게 끝났다. 기관총을 장착한 영국군은 짧은 시간에 1만 명의 적군을 몰살시켰다.
영국군 사망자는 고작 20명뿐이었다. 기관총이 폭격기, 대포, 독가스 등 대량 살상 무기로 바뀌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십 수 년에 지나지 않았다.
1차 대전은 수많은 인간집단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군인 900만 명을 포함한 엄청난 호모사피엔스가 희생당했다. 자연에선 가장 강한 집단이었지만 어리석게도 자신들끼리 죽고 죽였다. 인간의 살상능력은 나날이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1차 대전에는 그 흔한 전쟁 영웅이 없다. 영광은 사라지고 오로지 비참함만 남았다. 패전국인 독일, 오스트리아, 오스만 제국은 물론 승전국인 영국, 프랑스, 러시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베르뎅 전투는 역사를 바꾸어 놓진 않았다. 하지만 인류가 저지른 가장 어리석으면서도 가장 잔인했던 전쟁의 한 표본으로 역사에 남기엔 충분했다. ‘노 맨스 랜드(No Man`s Land:죽음의 땅)’로 변한 베르뎅 일대는 꽤나 이성적이라고 자부했던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닫게 해주었다.
1차 대전서 참호와 철조망, 기관총은 ‘악마의 3형제’로 불렸다. ‘노 맨스 랜드’에는 그 악마 3형제들에 의해 희생당한 인간의 죽음이 사방에 늘려 있었다. 참호의 길이는 무려 760㎞에 달했다.
참호는 적의 기관총과 대포로부터 몸을 보호해주었으나 그 안은 생지옥이었다. 높은 습도와 진흙, 시체 썩는 냄새와 온갖 오물은 쥐들의 번식에 가장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쥐들은 점점 크기를 불려 나중에는 고양이마저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커졌다. 그들은 부상으로 죽어가는 병사들의 목으로 들어가 간을 파먹기도 했다. 간은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위다. 노 맨스 랜드는 적군과 아군조차 구분하지 않았다.
가장 어리석은 전쟁의 가장 참혹한 전투가 벌어진 뫼즈강은 원래 독일과 프랑스를 나눈 경계였다. 그 강을 중심으로 독일과 프랑스는 300여 일 간 죽기 살기로 싸웠다.
왜 싸워야만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