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7개의 강(33)

1. 몽골제국과 양자강

by van


쿠릴타이


칭기즈칸은 거대한 제국을 남겼다.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 이르는 대제국이었다. 단일 국가로는 인류 역사상 최대 영토였다. 그가 죽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제국을 이끌어 갈 다음 칸은 누가 될까.


상황은 매우 복잡했다. 종합하면 두 개의 쟁점으로 정리될 수 있었다. 우선 ‘쿠릴타이’로 불리는 몽골의 독특한 칸 선출방식부터 이해해야 한다. 칸은 세습이나 지명되는 자리가 아니었다. 칸은 선출됐다. 나중에는 세습제로 바뀌었지만.


두 번째는 왕위 계승 후보들이었다. 조건은 하나뿐 칭기즈칸의 아들이어야만 했다. 명목상 1순위인 장남 주치는 이미 사망했다. 주치의 아들 바투는 당시 ‘사인 칸(훌륭한 임금)’으로 불리고 있었다.


칭기즈칸의 후계자로 손색없었다. 하지만 거리상 너무 멀리 있었다. 바투의 본거지는 러시아 초원이었다. 몽골 본토의 지배권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다면 누가 돼야 하나.


몽골의 ‘쿠릴타이’는 요즘으로 치면 국회나 마찬가지다. 8백 년 전 칸의 선출은 놀라울 정도로 민주적 절차에 의해 진행됐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선거의 결과가 늘 최상일 순 없었다.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최악의 정치’라고 불렀다. 스승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고 간 다중의 어리석음을 목도한 그는 무지한 다수보다 눈 밝은 철학자 한 명에게 더 기대를 걸었다.


중국은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들에 의한 집단지도 체제다. 시진핑 당 총서기도 그들 중 한 명이다. 그들은 국민들의 투표에 의해 선출되지 않는다. 엘리트 코스에 의해 길러진 인재 가운데 발탁된다. 개인 위주의 미국식 민주주의와는 다르다. 미·중의 대결은 곧 이 두 방식의 충돌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방식은 느리고 어리석게 보일 때도 있다. 솔론(기원전 638~558) 시대 외국의 왕이 아테네를 방문했다. 당시 아테네의 시민은 민회에 참여하여 직접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왕은 민회의 투표 장면을 지켜본 후 “현명한 사람들은 발언만 하고 정작 바보들이 중대 사항을 결정하는 군요”라며 비꼬았다.


민주주의는 수 천 년의 정제 과정을 거쳐 완성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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