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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십세기 소년 Feb 09. 2021

#모두의 4차 산업혁명 : 37교시

거대사를 통괄하는 산업혁명 클래스

#43. AI 아티스트2                         

                   

 2018년 어느 날, 저는 극장에서 세월호 사건을 다룬 영화 ‘그날 바다’를 보고 왔습니다. 그날 밤 뭔가 멜랑꼴리한 기분을 느꼈고 마침 인공지능 음악 메이킹 사이트인 ‘주크데크(jukedeck)’에 접속해 있었고 무심코 곡을 만들어 봤습니다. 몇 가지 디렉팅만 해주면 되는데, 영화 음악 장르의 느린 템포, 클라이막스가 있고 1분 30초 정도 되는 시간을 설정하고 만들기를 지시했습니다. 1분여가 채 지나기 전에 주크데크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음악을 만들어 mp3로 다운로드 받게 해주었지요. 그 전에도 수십여 곡을 만들어 보긴 했지만 그날 만든 음악은 우연의 일치인지 마치 세월호 희생자에게 바치는 진혼곡 느낌이 물씬 나는 곡이었습니다.


 저는 이 곡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바로 저작권위원회 홈페이지를 통해 저작권 신청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인공지능이 만든 음악을 저의 저작권으로 신청하다니요. 네, 가능합니다. 아직 인공지능 저작물에 관한 권리 규정이 없으니까요. 



 창작물을 자연인이 어떤 수단을 통해 만들었는지는 형식주의 성격의 저작권 등록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죠. 저는 진혼곡 성격의 그 곡에 ‘A requiem from the sea(바다로부터 온 진혼곡)’이라는 제목으로 저와 제 아내, 딸 아이 이렇게 셋의 공동 저작물로 순수음악, 작곡의 범주로 신청하기에 이르고 며칠이 지났을 무렵 저작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인공지능 저작물에 관한 자연인의 저작권 등록 실험이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순간이었지요. 곡의 완성도는 복불복이지만 제가 그날 만든 음악은 정말 딱 맞아떨어진다는 표현이 정확하듯 세월호 사건의 가슴 아픈 감정을 경건하게 표현해 주었습니다. 



 이처럼 그림을 넘어 음악 분야에서도 인공지능의 창조 열풍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2012년 미 하버드대에서 '컴퓨터공학' 수업을 청강하던 영국인 에드 뉴턴렉스(Newton-Rex)는 문득 ‘음악이 가진 수학적 요소를 이용한다면 컴퓨터가 곡을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합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학부 시절 음악을 전공했던 그는 이 수업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고 하는데요, 이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기 위해 여덟 살 무렵부터 동네 친구였던 패트릭 스톱스(Stobbes)를 끌어들였습니다. 스톱스도 대학 시절 아마추어 밴드 활동을 할 정도로 음악에 관심이 많았지만, 대학에선 경영학을 전공한 다음, 당시 구글에서 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2012년 12월 인공지능 음악 제작업체 주크데크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jukedeck.com]


 스톱스 주크데크 공동 창업자 겸 COO(최고운영책임자)는 "곡에 담긴 멜로디나 박자, 화음, 리듬 같은 구성 요소는 일정한 패턴이 있어 결국 수학적으로 분석이 가능하다"면서 "이를 컴퓨터 시스템에 잘 접목하면 인공지능 음악과 관련해 무궁무진한 사업 세계가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고 말했죠. 주크데크가 도약하기 시작한 건 2014년에 영국에서 벌어진 세계 최대 벤처기업 경연대회 '테크크런치 디스럽트(Techcrunch Disrupt)'에서 주크데크는 1위를 차지하면서 상금과 함께 여기저기서 투자를 받아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됩니다. 현재 주크데크의 서비스는 이용할 수 없는데 틱톡에 인수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이후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음악을 만드는 시도는 여기저기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Amper Music, AIVA, Melodrive 등 저마다의 딥 러닝 기술을 갖춘 음악 제작 스타트업들이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창작의 고뇌를 담은 순수 인간의 예술과 인공지능 저작물에 대한 경계가 모호해 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레코드 판, 카세트 테잎으로 또 CD로 그 매체를 달리해가며 음악을 ‘소유’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가난한 대학 시절, 집에서 책 사라며 보내준 용돈의 거의 전부를 음반 사는데 썼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는 밥은 굶어도 음악을 하지 못하거나, 듣지 못하는 건 죽음보다 괴로운 일이었죠. 돌아보면 사소한데 목숨 건 겪인데 말이죠.(웃음) 그러나 지금은 음반을 소유하지 않습니다. 단지 디지털 파일이죠. MP3에 대한 시대적 저항도 만만치 않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MP3로 음악 씬이 변하게 되면 모든 아티스트와 제작사, 유통사는 망할 것이란 예측을 하는 전문가도 많았죠. 전통적 방식의 음반 시장의 모습은 많이 달라지고 대체된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요. 당장 CD를 팔 음반점이 사라졌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어떻죠? 디지털 음악 시장은 이미 자리를 잡았고 아티스트들은 여전히 창작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수익원도 매체별로 다원화되었고 또 투명해졌지요. 소비자 경험에 의해 시장이 바뀐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막 등장한 인공지능은 어떨까요? 기계와 협업하거나 인공지능 스스로 학습해 창조해낸 결과물이 인간을 감동시키고, 영감을 줄 수 있다면 충분히 그 예술적 가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수요자 중심으로 시장은 변해갈 것입니다. 포노 사피엔스 세대가 이를 하나의 장르로 구분 짓고 즐기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르죠. 그러면 연말 음악 시상식에서 인공지능이 상을 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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