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레이더 / 2023 K-POP with Technology 참석후기
요즘 지극히도 오랜만에 무언가를 열렬하게 좋아하고 있다. 어느 정도냐면 너무 좋아한 나머지 하루 꽉꽉 채운 스케줄마저 뒤엎어버리고 좋아함에 모든 시간을 내어줄 정도로. 그렇게 하루를 지새우고 침대에 누워 내일을 준비할 때마다 찾아오는 현타에 가끔 머리가 지끈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찾게 될 정도로 아주 열렬하게.
뭐, 이렇게 구구절절 나열했지만 쉽게 말해서 덕질을 하고 있다. 오랜만에 하는 아이돌 덕질이다. 지금까지 나는 살아오는 모든 순간 무언가를 그리고 누군가를 좋아했다. 그건 때때로 차원을 자유롭게 넘어섰다. 2D도 좋아했고 3D도 좋아했다. 3D는 한국 아이돌일 때도 있었고 일본 아이돌일 때도 있었다. 2.5D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벤트도 참여한 적 있을 정도였다. 온갖의 것을 좋아했던 내 요즈음에 들어온 친구는 아주 놀랍게도 2D이자 3D이자 2.5D를 모두 아우르는, 지금까지의 나의 덕질 역사를 꿰뚫는 아이돌의 등장이다.
그게 누구냐고?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다.
버추얼 아이돌이란 무엇인가 하면 MBC FM4U 라디오 GOT7 영재의 친한친구에서 나온 내용을 발췌하자면 다음과 같다.
버추얼 아이돌이라고 하면, 가상 세계에서 온 아이돌을 의미한다. … 그중 플레이브는 모션 트래킹과 실시간 렌더링 기술을 통해 각각 한 인물의 목소리와 동작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다. 직접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모습을 아바타를 통해서 구현. 대중 앞에 보이는 모습만 조금 다른, 새로운 형태의 아이돌 형태다.
23.09.09 방송 中
요 친구들을 좋아하다 보니 버추얼이라고 하는 영역이 궁금해졌다. (지금까지 버추얼에 전혀 관심이 없던 건 아니었다. 나름 즐겨보는 VTuber도 있고, 이런저런 것을 많이 알긴 한다. 다만 그 관심의 정도가 지나치게 얕았을 뿐이지.) 그래서 앞으로 이 친구들에 대해 그리고 이 친구들이 속해 있는 소속사 (혹은 기업) 및 이 업계에 대해 아주 깊숙이 파헤쳐 보고 싶은 그런 욕심이 생겼다. 앞으로 이 챕터를 채워나갈 이야기는 나의 덕질에 대한 탐구이자 무한한 애정 기반의 에세이다. 그리고 이건 그 첫 발에 해당하는 기록이겠지.
그 일환으로 2023년 09월 22일 금요일 성수에서 열린 [2023 K-POP with Technology(출연 연사 : 블래스트 CSO 박다겸 님, 평론가 차우진 님)]에 다녀왔다. 다녀올 수 있던 이유는 순전히 타이밍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이번 컨퍼런스는 11월에 있을 [케이팝레이더 컨퍼런스]의 선공개 세션으로, 케이팝레이더 뉴스레터를 통해 참여자를 모집했다. 내 취미 중 하나가 무수히 많은 뉴스레터를 구독하는 것인데, 때마침 케이팝레이더의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있었고, 선착순이었는데 다행히도 제한 인원수 안에 안착할 수 있었다.
아주 운이 좋았다.
나는 이번 컨퍼런스 참여에 아주 진심이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선착순이니까 빨리해야 한다고 생각해 허겁지겁 신청폼을 작성했는데 문득 전화번호를 잘못 입력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미쳐, 며칠을 고심하다 결국 담당자분께 확인 메일을 보내야 할 정도로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다녀온 컨퍼런스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자세한 내용은 이후 영상으로 등록된다고 하니, 해당 영상이 등록되면 링크도 같이 첨부하도록 하겠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중점으로 다룬 이야기는, 블래스트 또는 플레이브의 지금까지의 행보, 그 행보 속에서 추구하려는 가치는 무엇이었는지였다. 두 가지를 나눠서 정리해 보도록 하자. 하나는 플레이브를 만든 블래스트라는 회사에 대해서, 다른 하나는 플레이브 자체에 대해서이다.
** 컨퍼런스 시 나온 내용을 인용 및 정리하였습니다만, 컨퍼런스 당시 메모를 해두었던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했기 때문에 실제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ABOUT 블래스트
블래스트는 타사와 비교했을 때의 경쟁력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UNREAL ENGINE을 기반으로, 버추얼 라이브와 게임 엔진으로 제작하는 시네마틱을 이용해,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Virtual IP를 만드는 것.
UNREAL ENGINE이란,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게임엔진계의 터줏대감이라 불린다고 한다. 여기서 게임엔진이란,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선 수많은 기능을 만들어야 하는데, 게임에서 자주 쓰이는 소프트웨어와 도구, 기능 등을 모아 놓은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게임엔진을 통해 누구나 높은 수준의 게임을 빠르고 쉽게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버추얼 라이브와 씨네마틱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UNREAL ENGINE 안에서 제공하는 솔루션의 일종인 것으로 유추된다. (UNREAL ENGINE의 문서를 찾아서 읽어보긴 했는데, 너무도 낯선 것들의 향연이라 정신이 아찔했다.)
아무튼, 게임엔진과 모션 캡쳐 리타게팅을 이용한 영상 제작 혁신을 꾀하고 버추얼 라이브를 실현시킴으로써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역량을 가진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 요지이다. (실제로 블래스트 자체로 광학식 버추얼 스튜디오를 설립하기도 했고, 블래스트의 대표님인 윌리엄은 MBC에서 20년 동안 CG 팀에서 일을 하셨을 정도로의 베테랑이시라고 한다.)
이러한 기술을 기반으로 어떠한 IP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어질 때,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오디언스(audience)에게 어떻게 설득력을 부여할 것인가.
그리고 아직까지 일반 대중이 갖고 있는 괴리를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가.
실제로 블래스트는 이러한 고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을 했다.
버추얼 IP를 만들면서 고민한 것은, 버추얼 아티스트라면 모든 것이 버추얼이어야 할까?
어떤 부분은 버추얼인 것이 좋고 어떤 부분은 현실로 남겨두었을 때 좋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 결과가 캐릭터와 그 캐릭터와 접촉하는 공간은 모두 버추얼에 있지만, 캐릭터와 1:1로 매칭되는 아티스트, 아티스트가 하는 언행이 모두 실제여야 많은 감동을 줄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희 아티스트는 다른 버추얼 아티스트들과 달리 사람들 배제하지 않음으로써 대중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추구하는 방향성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했을까. 이에 대해 블래스트는 두 가지의 답을 내놓았다. 웹툰 스타일과 K-POP이 바로 그것이다.
실사 형태가 아닌 웹툰 스타일을 택한 이유는 실사 형태, 그러니까 버추얼 휴먼의 형태가 될 경우, 비교 대상이 인간이 되게 된다. 기술의 발전 방향성도 사람의 유사성을 기저에 둘 수밖에 없다.
아무리 고퀄리티의 버추얼 휴먼이 탄생한다고 해도 그 자연스러움이 얼마나 인간에 가까운가, 그리고 사람이 제공하고 있는 가치 그 이상의 것을 제공할 수 있는가에 대해 확신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역체감을 일으킬 수밖에 없게 되고, 이를 역전시킬만한 오디언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기란 쉽지 않다. 기술뿐만 아니라 대중의 인지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진보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도 비대해질 뿐이다.
본 컨퍼런스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불쾌한 골짜기의 영향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인간에 가까워지는 가상의 것을 바라보는 것은 생각보다 더 높은 심리적 장벽이 있을 테니.
그렇기에 택한 것이 웹툰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웹툰이라고 하는 것은 원래부터 공간과 차원의 제약이 있는 콘텐츠이다. 스마트폰, 데스크톱과 같이 단말을 경유해야만 접할 수 있으며, 평면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여기에 모션을 가미하고 동적인 언행, 그리고 실시간 라이브 등과 같은 기술을 부여함으로써 평면의 콘텐츠를 입체적으로 변모시킨다면? 작은 기술적인 진보에도 기존 웹툰과 같은 콘텐츠를 좋아하던 오디언스에게는 새로우면서도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웹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새로운 타깃층을 마련할 수도 있는 가능성도 엿보였을 터였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버추얼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크게 두 가지 양상이었던 것 같다. 버추얼 휴먼처럼 정말 사람과 유사성을 띤 무언가든가, 아니면 일본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캐릭터든가.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 스타일에 있어서는 Vtuber의 형태기는 하지만 ANYCOLOR 사의 니지산지나 COVER 사의 홀로라이브처럼 이미 선두주자가 존재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웹툰 스타일은 큰 차별점이었을 것이고, 블래스트라는 회사가 한국에서 시작된 회사라는 점에서도 큰 강점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웹툰이란 이제 아이피 업계에 있어서 주류가 된지 오래다. 그건 다시 말해 더 많은 대중들의 시선을 끌기 좋은 기회가 마련되어 있음을 상징하기도 했다.
웹툰 이외에도 한국이기 때문에 가장 큰 장점을 갖는 문화 콘텐츠 중 하나는, K-POP이다. 한국이기 때문에 K-POP과 관련된 좋은 인력을 모으기 쉬운 환경이라는 점도 있으면서, 음악 특성상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쉽게 소비될 수 있기 때문에 확산성에도 기대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웹툰 스타일 + 케이팝 장르 + 하이테크 = 블래스트
지극히 한국적이고 지극히 확산성이 빠른 두 콘텐츠인 웹툰과 음악. 그리고 이 둘을 하이테크로 결합시킨 것이 블래스트라는 회사이며, 이들의 결산물이 바로 플레이브다.
ABOUT 플레이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플레이브 가장 지향하는 점은 대중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팀 플레이브를 꾸려나가면서 다음과 같은 측면에 주목했다고 한다.
팬분들의 니즈가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춰 기술은 뒤로 숨고 오디언스와 아티스트를 연결시키고자 했다.
실제로 팀 플레이브를 운영하면서 배운 점 4가지를 소개했는데, 그중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가장 플레이브가 현재의 팬에게 가장 어필된 부분은 이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빠르게 내놓고 보완해나가기.
: 오류가 많이 나고 라이브에서 많은 실수가 나더라도, 빠르게 시장에 선보인 다음 오류를 디버깅하는 방향을 추구했다고.
크리에이티브에게 권한을 주고 자율성을 보장해 주기.
: 플레이브는 자체적으로 음악과 안무를 만들고 있는데, 사실 그 배경에는 블래스트의 한계가 있었다. 아무래도 기술 회사다 보니 엔터테인먼트 역량이 적을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좋은 곡을 받아올 수 있는 환경이 적었다. (플레이브가 선보이기 전 단계에서는 어필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도 적었을 터이니.) 그렇기 때문에 아티스트가 직접 나서는 방법을 취했다고 한다., 오히려 그 덕에 아티스트의 성향이 작업물에 드러나게 되며. 작업물을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 환경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잠시 개인적인 일화를 소개하자면 얼마 전에 플레이브의 팬 두 명을 만난 적 있다. 그러던 중 플레이브의 첫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둘은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낯섦을 겪었다고 했다. 한 명은 캐릭터 자체가 아이돌로서 활동하는 것 자체를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했고, 다른 한 명은 잘 갖춰진 캐릭터가 내뱉는 소리가 성우처럼 가다듬어진 소리가 아닌 사람 본연의 날 것의 소리가 나는 것에 위화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두 사람 모두 플레이브를 좋아하게 된 부분이 유사했다. 기술적인 결함이 주는 유쾌함과 음악적 역량의 뛰어남이었다.
기술적인 결함은, 데이터 및 기술의 오류로 손발이 꺾인다든지 갑자기 하늘 위로 캐릭터가 날아다닌다든지 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본적 없는 부류의 즐거움(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상황이 주는 즐거움)과 그런 예측불허의 상황에 당황하거나 못내 웃어버리는 아티스트의 반응이 웃음을 자아냈다. 그렇게 진입장벽이 낮춰졌는데, 자체 제작으로 음악과 안무를 만들고 노래 자체를 잘하는 모습에서 전문성을 느끼자 보다 수용적인 태도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결국 플레이브가 해야 했던, 대중들이 갖고 있는 장벽을 낮추고 설득력을 부여하는 일은, 인간적이지 않은 유쾌함과 인간적인 전문성을 동시에 가져갔기 때문에 비로소 그 포문을 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덕에 플레이브는 예상보다도 더 빠르게 그 성장세를 보일 수 있지 않았을까.
이번 컨퍼런스에 대해 개인적인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플레이브와 블래스트의 현재에 대해서는 알 수 있었지만 그들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연설 이후에 많은 현장 질문이 오갔는데 명확하게 답변을 받은 것이 없었다. 블래스트 자체가 아직 신생 기업으로 이제 막 시작 궤도에 오른 참이라는 점(블래스트는 2022년에 독립 법인이 되었다), 올해 3월에 데뷔했을 뿐인 신인 아이돌이라는 것, 버추얼이라고 하는 아직은 낯선 장르라는 것이 어우러져 컨피덴셜한 부분이 많았던 것 등등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회사 입장 상 아직은 드러낼 수 없는 내용이 많다 보니 질문의 의도와는 다른 답변이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앞으로의 회사 방향성 및 결국 궁극적인 지향점을 알고 싶었던 필자로서는 더더욱 그러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결국 플레이브 더 나아가 버추얼 아이돌은 어떤 형태를 띠게 될 것인가.
이번 컨퍼런스를 함께해 주신 차우진 평론가분께서 컨퍼런스 초반에 해주셨던 이야기가 아주 기억에 남는다.
단순히 콘텐츠와 기술의 결합만이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생산자 관점과 소비자 관점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고, 특히 소비자 입장에서는 신기하거나 또는 이상하다는 양극단의 반응이 잔류해 있는 상황이다. 이런 소비자의 제한적인 감정을 넘어선 가치를 어떻게 하면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컨퍼런스 중에 언급된 ‘기다릴게’ 곡의 음악중심 데뷔, 그리고 ‘왜요 왜요 왜?’ 음악의 틱톡 챌린지 영향력.
한 명의 팬으로서 느끼는 것은 ‘여섯 번째 여름’이라는 곡의 임팩트.
최근 팬덤의 성장에 따라 성숙한 팬 문화 정착에 딜레이가 가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비판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할 부분은 맞으나, 다른 관점에서는 결국 그만큼 팬의 수가 예상보다 더 빠르게 확장되다 보니 불거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중에게 있어서 플레이브는 생경하다. 플레이브만의 것은 아니다. 버추얼이라고 하는 존재 자체와 정체불명의 것에 무조건적인 사랑을 쏟는 팬들의 모습은 대중들에게는 기이한 것일 터다. (나도 그런 시선을 많이 아주 많이 받고 있다) 과열되고 있는 팬덤을 어떻게 성숙화시킬 것인가, 이질적임을 느끼고 있는 대중들에게 어떻게 설득력을 펼쳐 나갈 것인가.
앞으로의 행보가 아주 기대가 된다. 한 명의 팬으로서, 그리고 한 명의 대중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