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M. 바스콘셀로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
중고등학교 학창시절, 추천 책 목록에 항상 적혀 있었고, 아마도 그때 어느쯤엔가에는 읽어봤던 적이 있지 않았을까? 갑자기 이 책이 눈에 들어온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덧 살아온 인생의 1/3을 남의 나라에 발붙이고 살면서, 넘어지기도 하고, 헤쳐가기도 하고, 또 이뤄가기도 하고...살아냈던 지난 시간을 거치며 잊고 지냈던 어린 감성을 찾고 싶었던 걸까? 아니, 흔히 나이가 든다하니, 어린 시절을 찾고싶은 회오리가 마음 속을 흔들어 놓았을 수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 혼자서 ‘피시식’ 웃음짓고, 옅은 미소가 굳은 얼굴을 가려주고, 때론 안타까움의 가슴 저미는 느낌을 받으며, 중간에 쉬게되면 영화의 중간을 놓치는 기분이 들어 이틀만에 후다닥 책 장을 연이어 넘기게 되었다.
먼저, ‘책 속의 제제가 어린 나이에 저렇게 철 들은 생각을 할 수 있나?’ 분석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의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해 준 시간이, 메마르고 굳어진 마음에 물을 뿜어 준 것에 고마울 따름이다. 어린아이에게 ‘장난’이 없다면, 어린아이일 수 있을까? ‘장난꾸러기’는 ‘순수함’이 있을 때 나오는 건 아닐까? 그런 ‘순수함’을 ‘나이 듦 혹은 철 듦’으로 잃어버리게 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는 오히려 그런 순수한 ‘제제’를 제대로 알아보는 ‘뽀르뚜까’ 아저씨가 될 수 있는가? 하고 내 안에 물어본다. 아이들의 ‘장난’을 단지 ‘지금 그러면 안돼!’ 하는 식의 규율을 정하는 어른의 모습이 되어버린 내가 이제는 아이의 ‘장난’에 동화되어 같이 웃는 ‘어른아이’의 모습을 갖고 싶다.
그러나, 그렇게 아이들과 놀고 있는 어른을 보면, 이제는 이상하게 쳐다보는 세상이 되어 있지 않은가? 미디어의 발달, 핸드폰의 보급, 무선네트워크, AI 등 각종 첨단기술이라는 명목하에, 더이상 아이들의 순수함을 거론하는 것이 지루한 주제가 되어있는 시대는 아닌가? ‘아이들의 어른따라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지껄이는 시대, ‘성형수술이 학생들의 열망이 된 시대’, ‘온라인 게임이 순수를 먹고 있는 시대’, ‘머리숙인 콩나물마냥 핸드폰에 빠져있는 개인의 시대’, ‘아이들의 순수는 이제 다른 단어로 선택되어져야 하나? ...등등 당신은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 ‘장난꾸러기’, ‘순수함’, ‘새싹들’, ‘왁자지껄’, ‘아이들의 놀이소리’ 과연 당신이 살고 있는 주변에서는 얼마나 보고 있는가?
앞으로 청소년 권장도서라고 했던 명작들, 아이의 시선이 되어보는 명작들을 삶의 여정가운데 같이 가는 친구로 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