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업체의 중요성
장비는 종종 차가운 금속과 복잡한 회로의 집합체로 보이지만, 그 본질은 결국 사람의 필요와 안전을 향한 고민에서 비롯된다. 오늘 우리 팀은 동결건조기 제작업체를 방문했다. 단순히 기계를 견학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공장의 환경과 안전 철학이 녹아든 우리만의 장비, 그리고 고유한 컨셉을 정립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방문한 업체는 타사에 납품할 동결건조기를 거의 완성된 상태였다. 공장 한편에 자리 잡은 그 장비는 공장 인수 시험(FAT)을 마친 상태였는데, 바이얼(Vial) 전용으로 제작되어 세척(CIP)과 멸균(SIP)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고 특히 정교한 자동 로딩/언로딩 시스템(ALUS)이 적용된 모습은 잘 짜인 안무를 보는 듯 정교하게 운전되고 있었다. 그러나 기계적 완성도를 위해 많은 공간이 필요했다. 내부의 선반 Up/Down을 위한 하부 공간과 Loading/Unloading을 위한 챔버가 차지하는 부피는 예상보다 컸고, 선반 Up/Down 유압 피스톤으로 인해 상당한 설치 높이가 요구되었다. 우리 공장의 협소한 공간을 떠올리니, 자동과 수동, 혹은 반자동이라는 선택지 사이에 많은 생각이 교차되었다. 공간의 제약은 설계의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변수이기에 더 좋은 컨셉이 필요했다.
우리가 이번 미팅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바로 ‘안전’, 그중에서도 방폭(Explosion Proof) 적용에 관한 것이었다. 제작 업체는 기계적 완성도는 신뢰할 수 있지만, 방폭장비에 대한 경험은 전무했다. 반면 우리는 방폭 지역 내 수많은 장비를 운용해 온 경험과 데이터,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협력업체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었다. 미팅은 일방적인 요구가 아닌, 기술 교류로 이어졌다. 우리는 방폭에 필요한 정보와 업체를 공유했고, 제작 업체는 이러한 새로운 요청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최고의 장비를 위한 공통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은 일종의 파트너십 형성 과정이었다.
머릿속에 수많은 기술적 과제들을 오고 갔다. 좁은 공간이라 오히려 수동작업이 더 유리할 수도 있었다.
피자 도어(Pizza Door) 설치를 통해 로딩과 언로딩 시 교차 오염을 막고 작업자와 제품을 보호하는 방안.
좁은 공간 효율을 위해 챔버 도어를 유틸리티실 쪽으로 배치할 것인지.
그냥 청정실 내부로 챔버 도어를 설치하고 Clean Booth를 설치하는 것이 적합할지.
선반의 크기와 트레이 규격을 기존 시스템과 호환할지 아니면 완전히 새롭게 설계할지.
선반의 승하강 기능을 통해 작업자의 트레이 Loading시 부담을 줄일 수 있을지.
선반 프리쿨링(Pre-cooling) 후 차가워진 선반 위에 트레이를 Loading 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얼어붙음’ 현상은 어떻게 해결할지.
방폭 지역과 비방폭 지역의 유틸리티를 어떻게 구분하여 배치할 것인지.
양압실을 구성하여 방폭 구역을 일반지역과 명확히 구분할 수 있을지.
고진공 펌프 후단의 벤트(Vent)가 대기방지시설(Scrubber)로 연결될 때 방출되는 용매 가스의 응축액을 어떻게 처리할지.
챔버 내부의 진공을 측정하는 고진공 센서로 MKS센서와 피라니(Pirani) 센서 중 어떤 게 우리 공정에 적합할지, 수분에 민감한 피라니 센서의 특성이 공정 안정성을 해치지는 않을지.
연속 공정 진행을 위해 콜드트랩(Cold Trap)의 얼음을 얼마나 빠르게 제상(Defrosting)하여 다음 배치를 준비할 수 있을지.
콜드트랩의 온도를 더 낮게 할 수는 없을지.
수많은 기술적 어려움과 고민, 안전에 대한 이슈들이 많지만, 마음이 무겁지만은 않은 이유는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나갈 든든한 파트너를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차가운 진공 장비를 다루지만, 그 안을 채우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뜨거운 열정과 협력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참으로 기분 좋은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