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화재경보와 스팀의 흔적

by 이재원

우리 팀의 하루는 늘 같은 루틴으로 시작된다.
7시 50분이 되면 체조 음악이 흘러나오고, 모두가 함께 스트레칭을 한 뒤 관리감독자의 주도로 TBM(Tool Box Meeting)을 실시한다.
인원 점검, 건강 상태, 외부 작업, 자체 작업, 그리고 고용노동부 사고사례를 공유하며 우리의 안전의식을 강화한다.
우리에겐 매일 반복되는 이 아침의 루틴이, 공장을 지탱하는 첫 번째 안전장치다.


오늘은 루틴이 시작되기도 전에 전화벨이 울렸다. 안전팀 팀장님의 번호다.

새벽녘, 관리동 4층에서 화재 감지기 신호가 잡혔다고 했다.

담당자가 급히 출근하여 확인했을 때는 특이사항이 없어 새벽에 솟아진 비로 인한 오작동이라 여겼으나, 날이 밝고 다시 확인해 보니 상황이 달랐다고 했다. 감지기 신호가 4층과 연결된 옥상 공조실이 문제였다. 그곳은 이미 스팀으로 가득 차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태였고, 뜨거운 열기가 정온식 감지기를 작동시킨 것이었다. 공조실 바닥은 이미 응축된 스팀으로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공조파트가 먼저 출동했고, TBM이 끝나자마자 우리도 현장으로 달려갔다.
공조실 문을 여는 순간, 습기와 스팀이 식어 생긴 물기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바닥은 젖어 있었고, 공조기계실의 모든 것이 밤새 물을 뒤집어쓴 듯 축축했다.

문제의 원인은 금세 드러났다. 스팀 공급배관에 설치된 스트레이너(Strainer)의 크랙으로 새벽부터 스팀이 공조실 전체를 채운 것이었다.
다행히 손상이 있는 부분은 없었고, 감전, 쇼트나 자동밸브의 고장 등 다른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정말 행운에 가까웠다.


우리는 즉시 메인 스팀을 차단하고, 창문과 문을 모두 열어 환기를 실시했다.
작업자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바닥의 물기도 완전히 제거했다.


공조기를 원상태로 가동하기 위해서는 스트레이너를 우선 교체해야 했다.
스팀과 물이 교차하는 부위는 갈바닉 부식이 특히 많이 발생하는 구간으로 동일 재질, 동일 사이즈로 자재를 주문했다. 1~2년 사용할 배관이 아니기에 불필요한 재질 혼합을 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공조 공급구역 팀에게는 스팀이 차단된 상태와 복구 예상 시간을 공유했다. 공조는 GMP 환경을 유지하는 설비로 업무에 혼선이 생기지 않도록 사전 조율이 반드시 필요하다.

긴급 수배된 스트레이너는 바로 교체되었다. 그런데 잠시 뒤, 다시 현장에서 연락이 왔다.
후렌지(Flnage) 부위의 스팀 누출이 잡히지 않는다는 보고였다.

문제는 단순했다. 원인은 메탈 개스킷 재사용.

스팀 라인은 고온·고압이 반복되는 구간으로 메탈 개스킷을 주로 사용하는데, 메탈 개스킷은 재사용 시 밀봉력이 크게 떨어진다. 새 개스킷으로 교체한 뒤에야 완전한 복구가 이뤄졌다.


이번 고장은 설비의 문제라기보다 부품 하나의 고장과 선택이 전체 시스템을 멈출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전날에도 우리는 생산동 옥상 외부에 노출된 스팀트랩과 밸브를 보온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했다.
노출된 밸브와 Trap은 겨울의 영하의 온도에 언제든 동파의 위험을 안고 있다.
동파는 스팀 누출로 이어지고, 이는 에너지 손실뿐 아니라 화상·화재 위험으로 직결된다.

오늘의 새벽 화재경보는 실제로 불이 난 것도, 사람이 다친 것도 아니었지만, 이런 경고야 말로 미래의 사고를 막는 가장 소중한 신호다.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아침 체조와 TBM은 단지 형식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을 깨우고 집중력을 모으는 준비운동이다.

안전은 거창한 슬로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작은 부품 하나를 제대로 알고 적용하는 것, 작업 전 TBM의 한 줄 안전을 놓치지 않는 것, 감지기의 이유 있는 울림을 흘려듣지 않는 것, 이러한 작은 실천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겨울이 깊어지는 만큼, 우리의 감각도 더 예민해졌으면 좋겠다.
오늘의 아침은 이를 잊지 말라는, 스팀이 전해준 조금 따뜻한 경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