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의 낮음과 100kw의 무거움
아침 공기는 아직 매섭다. 영하의 온도는 설비 곳곳을 조용히 감싸고 있었다.
순찰을 돌던 위험물 관리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옥외에 설치된 -30℃ 열매체 공급 펌프에서 미세한 리크(Leak)가 있다는 것이었다.
눈에 띌 듯 말 듯한 작은 튐, 작은 얼어붙음에서 어느 순간 대량 누출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 메인 유틸리티이다. 그의 날카로운 관찰력이 오늘도 사고를 예방하는 첫 번째 방어선이었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이미 흡착포가 몇 장 깔려 있다. 이 작은 조치 하나에도 그의 업무 성격이 나타난다.
다행히 펌프는 스페어가 설치된 구조로 밸브 조작을 통해 스페어 펌프로 운전을 전환할 수 있었다.
우리는 생산팀과 조율하여 오후 2시로 작업 시간을 정하고, 오전 동안 열매체 담당자와 전기 담당자가 현장의 상황을 확인하기로 하였다.
이번 작업은 외주가 아닌 팀 자체 작업으로 작업허가서는 따로 발행하지 않았지만, 이번 계기를 통해 내부용 작업계획서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
작업은 언제나 익숙한 순간에 사고가 난다는 것을 우리는 숱한 사례로 봐 왔기 때문이다.
오후 2시, 약속된 시간에 현장과 소통 후 펌프를 멈췄다. 밸브를 돌려 유로를 예비 펌프로 변경하는 것까지는 순조로웠다. 문제는 그다음, 전기의 길을 다시 트는 일이다.
이곳에는 100kW급의 거대한 펌프 두 대가 나란히 놓여 있지만, 속도를 제어하는 인버터(Inverter)는 한 대이다. 펌프를 바꿀 때마다 MCC(Motor Control Center) 반에서 육중한 모터 배선을 일일이 분리해 옆 단자로 옮겨 심어야 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 설치 당시에는 오버홀 기간에나 한 번씩 바꾸면 되니 예산도 아낄 겸 인버터 판넬을 하나만 두자고 했을 것이다. 전체 공사 금액에서 판넬 하나 더 설치하는 비용은 미미했을 텐데, 훗날의 유지보수에서 짊어질 위험과 수고로움은 간과된 셈이다. 좁은 공간에서 굵직한 배선과 씨름하다 보면, ‘절감’이라는 이름 아래 희생된 ‘안전’의 가치가 아쉽게만 느껴진다.
과거의 설계가 남긴 빚을 갚는 건, 결국 현재를 짊어지는 엔지니어의 땀방울이 된다.
단단히 결선을 마치고 설치된 LOTO(Lock out Tag out)을 제거후 전원을 투입했다. 모터가 기지개를 켜듯 웅장한 소리를 내며 돌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회전 방향을 확인하고, 이전과 동일한 RPM을 유지하도록 세팅했다. 귀를 기울여 모터의 베어링 소음을 체크하고, 눈으로는 열매체 토출 압력 게이지의 바늘을 좇았다. 인버터실로 달려가 발열 상태와 전력, 전압까지 꼼꼼히 살폈다.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모든 수치가 ‘정상’이라는 평온한 대답을 내놓았다. 누유가 발생한 기존 펌프는 전문 수리 업체의 손길을 거쳐 새로운 스페어로 준비될 것이다.
작업을 마치고 나니 담당자보다도 더 긴장이 풀리며 땀이 식는다. 담당자들의 전문성과 열정에 항상 마음이 든든하고 고맙다. 이곳의 설비들은 대부분 10년에서 20년 이상의 세월을 견뎌온 노장들이다. 1년 365일,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가동되는 유틸리티 장비들이기에, 전원을 내렸다가 다시 투입하는 순간은 언제나 심리적 부담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스페어 파트와 중요 부품을 쟁여두지만, 현장의 현실은 언제나 예측을 벗어나고 무언가는 항상 부족하다. 그렇기에 더욱 사람이 중요하다. 아무리 경력이 많은 전문가라 할지라도, 기계 앞에서는 겸손하게 된다. 혼자만의 확신보다는 동료의 교차 점검이, 혼자 하는 작업보다는 둘이 함께하는 ‘2인 1조’의 원칙이 우리를 지켜준다. 오늘도 우리는 오래된 기계들의 낡은 혈관을 보수하고, 차가운 열매체를 다시 흐르게 한다. -30℃의 냉기와 100kW 모터의 육중한 무게에서, 생산과 안전이라는 두 바퀴가 엇나가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것, 이것이 우리 매일의 현장에서의 노력과 자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