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수 없다고 말하는 ‘내일’

영화 <플랜 75>를 보고 나서, 브런치 작가로서의 첫 기록

by 써니


브런치에 간호사작가의 첫 글을 남기기로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만나게 된 주제가 ‘안락사'라니.

스스로도 조금은 당혹스럽습니다. 하지만 영화 <플랜 75>를 보고 난 뒤,

이 먹먹한 감정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초고령화 사회의 서늘한 예언서라고 말합니다. 75세 이상의 노인에게 안락사를 권장하고, 심지어 이를 65세로 낮추겠다는 정책. ‘생산성’이라는 차가운 잣대로 인간의 존엄을 재단하는 세상.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이 공포는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다가와 있었습니다.


대사보다 강렬했던 침묵

영화는 화려한 미사여구도, 드라마틱한 반전도 없습니다. 4명의 인물과 그들의 일상을 다큐멘터리처럼 묵묵히 비출 뿐입니다. 대사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는 것은 노인들의 떨리는 눈빛, 망설이는 몸짓,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풍경입니다.

주인공인 78세의 미치는, 사회가 규정한 ‘생산성 없는 존재’로 내몰리며 결국 ‘플랜 75’를 신청합니다. 그 옆에는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이웃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치는 달랐습니다. 죽음을 앞둔 이들이 곁에서 하나둘 떠나가는 순간, 그녀는 마스크를 던져버립니다. 그리고 건물 밖으로 걸어 나가서 해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결심합니다.

‘내일’을 만나러 가기로.

이미 죽은 자는 만날 수 없는 내일. 죽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세상. 그녀는 죽음보다 삶을 선택합니다. 돈도 없고, 기댈 가족도 친구도 없지만, 그녀의 선택은 그 어떤 항변보다 강렬하게 마음을 울렸습니다. 생산성이 없다는 이유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무가치하다고 낙인찍히는 사회에서 스스로 삶의 가치를 증명해 낸 것입니다.


시스템 속의 우리, 그리고 젊음들

영화 속에는 이 잔혹한 정책을 수행해야 하는 젊은이들도 등장합니다. 시청 직원, 콜센터 상담원, 유품 정리사. 이들 또한 시스템의 부속품처럼 일하지만, 그들 역시 내면에서 흔들립니다.

사람의 목숨값을 돈으로 환산하고, 존엄해야 할 죽음을 산업 쓰레기 처리하듯 다루는 일들. 그 과정에서 그들이 느끼는 죄책감과 고뇌는, 사실 언젠가 마주하게 될 우리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생산성이 없으면 인간이 아닌가요?”

영화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노인, 장애인, 난치병 환자 등 우리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그어놓은 선 안에서, 만약 그 대상이 나 자신이거나 내 사랑하는 가족이라면 우리는 과연 당당할 수 있을까요?


죽음으로 시작해 삶으로 끝난 이야기

<플랜 75>는 안락사라는 무거운 소재로 시작했지만, 결국 ‘삶’을 이야기하는 영화였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삶을 향해 고개를 돌린 미치의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가장 뜨겁게 보여주었습니다.

첫 글을 너무 무겁게 시작하는 건 아닐까 잠시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죽음’이 아닌 ‘내일’을 그린 영화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차갑고 쓸쓸해도, 해가 지고 다시 뜨는 내일은 여전히 아름다울 테니까요.

아직 우리는 내일을 만날 자격이 있습니다. 당신은 오늘, 어떤 내일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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