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우리는 오늘을 노래한다 ( 영화 플랜 75:두 번째 이야기)
대사가 많지 않은 영화는 때로 그 어떤 웅변보다 더 크고 무거운 울림을 남깁니다. 영화 <플랜 75>를 보고 난 뒤, 주말 동안 마음 한구석이 먹먹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 그리고 나이 듦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며 제 나름대로 해석한 인물들의 입장과 그 이면에 담긴 메시지를 두 번의 글로 나누어 정리해 보려 합니다. 그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주인공인 78세 미치는 호텔 객실 관리사로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동료가 근무 중 쓰러졌다는 이유만으로, '민원'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하루아침에 일터를 떠나야 했습니다. 재개발로 살던 집마저 비워야 하는 막막한 상황. 무직이라는 낙인은 새로운 일자리도, 보금자리도 구할 수 없는 차가운 벽이 되었습니다.
딸과의 연락은 끊기고, 텅 빈 우편함만이 그녀의 고립을 증명할 뿐입니다. 그런 그녀가 시청 직원에게 '플랜 75'를 신청하게 된 것은, 어쩌면 사회가 그녀에게 강요한 유일한 '선택지'였을지도 모릅니다. 콜센터 직원의 상담을 담담히 받아내던 그녀의 모습에서, 저는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밀려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그녀가 죽음을 맞이하려던 그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침대에 누워 죽음의 마스크를 쓰고 있던 그녀는, 옆 침대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는 또 다른 누군가를 목격합니다. 그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립니다.
죽음의 공포를 직접 마주한 순간, 역설적이게도 그녀는 다시 '삶'을 선택합니다. 마스크를 벗고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온 그녀는, 해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내일을 노래하는 그 뒷모습은 단순한 탈출이 아니라,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가장 고귀한 생명 선언이었습니다. 죽음을 권유받는 세상에서 스스로 생명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 영화는 2016년 일본 장애인 시설 흉기난동사건에서 감독이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생산성'이라는 차가운 잣대로 인간의 생존을 결정지으려 하는 세상, 초고령 사회와 저출산 시대라는 명목하에 노인들에게 죽음을 권하는 영화 속 이야기는 섬뜩할 만큼 현실적입니다. 과연 누구에게 타인의 생명을, 죽음을 결정할 권리가 있을까요?
영화는 정답을 내리지 않습니다. 다만 삼촌으로 인해 죽음의 시스템에 저항해보려 했던 시청직원, 돈뭉치와 시계를 보며 갈등하는 사후 물품 정리사, 마지막 전화 후에 끊어진 전화에 다시 전화하는 콜센터직원을 보여줄 뿐입니다. 이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하지만 묵묵히 자신의 내일을 이어갑니다.
영화는 주인공의 내일이 계속될 것임을 암시하며 끝납니다. 비록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더 가혹하고 차가울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내 주인공을 죽음이 아닌 '삶'의 풍경 속에 세워둔 것은, 우리에게 던지는 작은 희망이자 숙제가 아닐까요?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사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아직 만나지 않은 내일을 기꺼이 맞이하기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건강을 챙기고, 관계를 돌보며, 무엇보다 나라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일 것입니다.
오늘도 텅 빈 우편함이 아니라, 따뜻한 온기로 채워진 나의 하루를 준비합니다. 우리가 착실하고 건강하게 준비물을 챙길 때, 비로소 내일은 우리에게 더 다정한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