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상상하기. 다른 기획, 다른 기억 (3편)

조 편성부터 시작된 실전 설계 이야기

by 아빠쌤
계획은 결국,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자율’이라는 말은 멋지다.
그러나 그 말 속에는 언제나 ‘관계’라는 어려움이 숨어 있다.


수학여행 3일차를 조별·주제별 자율활동으로 구성해보자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아이들이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전부다”였다.


조직이 아닌 ‘사람’에서 시작하는 설계.
그것이 이번 기획의 본질이었다.

조 편성,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복잡한 선택

이상적으로는 학급의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조를 구성하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수학여행의 대부분 일정은 기본적으로 학급 단위로 움직인다.
이를 완전히 무시할 순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결정했다.


기본 조 편성은 학급 내에서 시작하되,

희망 주제와 목적지를 기준으로 학년 전체에 공유

제주도 내 두 지역, 제주시와 서귀포시로 구분


학생들은 자신이 탐방하고 싶은 지역과 주제를 선택했고,
자연스럽게 두 개의 팀으로 나뉘게 되었다.


조가 정해지면, 움직임도 달라진다

조 편성 이후엔, 바로 버스 배차와 인솔 교사 배치가 뒤따랐다.


제주시 팀, 서귀포시 팀의 인원 비율에 맞춰

각 버스를 새롭게 구성하고

해당 팀의 학급 담임 교사를 중심으로

인솔 교사 재편성까지 마무리했다.


보기엔 단순한 흐름 같지만,
조 하나가 바뀌면 모든 일정이 다시 흔들리는 구조였다.


조 편성 → 버스 배치 → 인솔 교사 조정 → 일정 재조정


하나의 결정이 곧, 또 다른 실무를 부른다.
작은 선택이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시간이었다.


드디어, 주제 활동 계획서 접수

조가 완성되자, 학생들은 자신들의 주제 활동 계획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기대 반, 걱정 반. 수업 시간에 준비한 조도 있었고, 방과 후에 모여 기획한 팀도 있었다.


첫 계획서를 펼쳐 본 순간, 나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기대감 — 아이들이 정말 즐겁게 고민했구나

걱정 — 이건… 너무 과감한 거 아닌가?


현실의 벽, ‘안전’이라는 단어

카야킹, 패러글라이딩, 낚시…

아이들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안전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 모험은 언제나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시 기준을 조율했다.

유도된 자율

말하자면 ‘안전한 자유’를 설계하는 프레임이었다.


유도된 자율의 원칙

사전 일정과 겹치지 않는 활동일 것

도시 탐방 중심의 주제를 권장할 것

안전장치 부족한 액티비티는 제외할 것

제한을 설정하는 것은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게 아니라,
가능성을 ‘현실 안에서 살아 있도록’ 만들기 위한 결정이었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틀 안에서 더 빛났다

그랬더니, 아이들의 상상력이 예상 밖의 방향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폭식했수다’
→ 제주 특산물의 역사, 재배환경, 유통과정을 탐색하며 브이로그 제작


‘이중섭 다시 보기’
→ 구도심의 도시재생과 예술공간을 탐방하는 도시연구 활동


‘역지사지팀’ (역사 알고 사회 알고)
→ 제주 4·3 유적지를 중심으로 지역사와 사회적 맥락을 조망


이 주제들은 관광을 넘어서 탐구에 가까운 작은 프로젝트였다.
단지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만의 시선으로 제주를 해석하려는 시도였다.


아이들은 ‘자유’보다 ‘자기만의 여정’을 원했다

처음 이 기획을 시작할 땐 솔직히 약간의 의심도 있었다.

“아이들이 과연 이렇게까지 할까?”


하지만 결과는 내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었다.

아이들은 단지 ‘노는 일정’을 바란 게 아니었다.

‘자기만의 여행’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계획하고, 질문하고, 조율하고, 무언가를 기획해본다는 경험 자체를
아이들은 처음이었음에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실전 설계는 마무리되었다. 이제, 마음을 나눌 차례

조 편성, 주제 확정, 이동 동선, 안전 기준. 구조는 모두 갖추어졌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틀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제 필요한 건,

이 모든 흐름을 아이들에게 ‘이해 가능한 언어’로 전달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함께 만들어갈

선생님들 한 분 한 분과의 신중한 조율이 다음 단계였다.


다음 편 예고

다르게 상상하기 (4): 안내서 3배, 책임감도 3배

– 설득이 아닌 ‘믿음’의 기록 만들기 –

자율 일정을 위한 안내 책자 제작

교사 브리핑 & 학부모 설명

학생과 학교, 가정을 연결하는 신뢰의 구조 만들기


수학여행 전체 테마

“The real voyage of discovery consists not in seeking new landscapes, but in having new eyes.”
— Marcel Proust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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