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은 용기보다 섬세함이다
아이들이 주도하는 수학여행,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나는 잠시 멈췄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해 보인다.
단 하루, 수학여행의 3일 차를 조별·주제별 자율 활동으로 바꿔보자—는 발상.
하지만, 기획은 결국 ‘현실’을 움직이는 일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샘플’이었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방식을 설명하려면,
그리고 동료 교사들과 설득력 있게 나누려면
‘보여줄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프레임부터 짰다.
그동안 고등학교 3학년을 맡아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진로와 관심사를 기준으로 주제를 구분했다.
인문, 사회, 자연과학, 공학, 예체능…
그 안에서 가능한 탐구 주제를 설계하고
제주도 안에서 실제로 연계할 수 있는 장소와 활동을 샘플링해나갔다.
그렇게 탄생한 건 단순한 ‘예시 목록’이 아니었다.
조별 주제 활동 계획서 샘플부터 결과 보고서 샘플까지,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상상이 현실이 되도록
발판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물론, 이 모든 작업을 혼자 한 것은 아니다.
동료 선생님들의 조언과 협조가 큰 힘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괜히 시작했나…
너무 일이 커지는 거 아닌가…?
샘플이 갖춰졌다면 이제 사람을 만나야 할 시간이다.
우선, 동료 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학생들의 관심사와 선호도를 파악했다.
그리고 내가 담당하는 학급을 중심으로 수업 중에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었다.
그 과정은 어느새 ‘상담’이 되었다.
아이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 무엇을 경험해보고 싶어 하는지
하나하나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쌓여갔다.
이 사전 조사는 단순한 데이터 수집이 아니었다.
그건 아이들과 신뢰를 쌓는 과정이었고,
그들의 시선을 수학여행 기획 안에 담기 위한 첫 번째 설계도였다.
학생들이 아무리 적극적이라도 교사와 학교,
학부모의 신뢰가 없다면
그 움직임은 멈출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동시에 여러 작업을 병행했다.
교장·교감 선생님과의 사전 면담
교육청 컨설팅 담당자와의 협의
학부모님께 전달할 동의서와 설명자료 작성
무엇보다 ‘안전’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예상 가능한 위험 요소들을 시뮬레이션하고
책임 범위를 명확히 설정했다.
아이들의 자율이 존중받기 위해선
그 안을 든든히 지탱해줄 신뢰와 안전이라는 기반이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준비는 끝났다. 계약도 마무리되어 간다.
버스
현지 가이드
여행사
활동 업체
이쯤 되니, 되돌아갈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느껴졌던 감정은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하는 책임감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이 모든 사전 준비 과정 자체가
아이들의 수학여행이 진짜 ‘자기 이야기’가 되도록 하는
가장 본질적인 교육이었다.
기획은 단지 ‘구조’를 짜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고, 설득하고, 연결하는 일이다.
라작가였습니다.
3편. 조 편성부터 시작된 실전 설계
– 계획은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
조별 구성, 주제 확정, 도시별 동선
현실적인 문제와 안전 이슈
제주도 안에서 펼쳐진 아이들의 상상력
“The real voyage of discovery consists not in seeking new landscapes, but in having new eyes.”
— Marcel Proust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데 있다.
– 마르셀 프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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