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상상하기. 다른 기획 다른 기억.(1편)

수학여행을 다시 상상해보기로 했다

by 아빠쌤

-낯익은 관행 위에 낯선 질문을 올려본 어느 여름날의 기록-


수학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는 오래된 한 장면과 마주했다.


작년에는 이렇게 했어요.


그 말은 익숙했다.
그리고, 너무 당연했다.
공공의 조직 안에서 관례란 효율 그 자체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말 앞에서 잠시 멈칫하고 말았다.


그럼… 왜 꼭 똑같이 해야 하지?

라는 질문이, 조용히 가슴 안에서 고개를 들었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이런 질문은 불편함을 동반한다는 것을.
그래서 대부분은 ‘불필요한 시도’라며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이번 수학여행은 10년 만에 다시 맞이하는 여행이었고,

무엇보다 내가 전체 기획을 맡은 상황이었다.

그건 단지 업무의 배분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여행을 ‘다시 상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한 가지 아이디어를 꺼냈다.


“3일차 일정만큼은,

아이들이 직접 설계하고

탐구하는 시간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그 말에 돌아온 반응은 대부분 염려와 담담함 사이 어딘가였다.


새로운 건 좋은데…
담당 선생님은 힘들지요.
애들은 좋아하겠지만...


그 말들 역시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기획자가 되고, 관찰자가 되고,

책임자가 되는 여행이 가능하다면 어떨까?

그 한 가지 상상이, 나를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3일차를 ‘조별/주제별 자율 주제 탐구일’로 구성하기로 했다.

물론 전체를 바꾸진 못했다.

계약된 일정과 업체는 그대로 두고,

단 하루만이라도 다른 가능성을 심어보자고 다짐했다.

계획은 구체적이어야 했다.


주제 샘플부터 탐구 계획서, 안전 가이드라인, 결과 보고서 양식까지

모두 직접 만들었다.

나는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학급을

‘표집 학급’으로 삼았다.

조심스럽게 질문했고,

아이들은 솔직하게 답했다.


“패러글라이딩 해도 돼요?”

“카약 타면서 사진 찍는 거는요?”


나는 그때 깨달았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넓게 보고 있었고,

나는 생각보다 훨씬 안전을 좁게 보고 있었다는 것을.

조율과 설득, 회의와 재설계의 시간들.

동료 선생님들을 일일이 만나고,

학부모 동의서도 직접 구성했다.

교장·교감 선생님께는 기획 의도와 리스크 매뉴얼까지 정리해 드렸다.


그리고 나서야,

3일차를 위한 새로운 일정이 정식으로 승인되었다.

이 글은 여행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질문의 이야기’다.

그 질문은 교육을 흔들진 않았다.

다만, 잠시 멈추게 했고, 새롭게 다시 보게 만들었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에 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수학여행의 테마로 정했던 이 문장이

이제는 내 교사로서의 좌우명이 되었다.

나는 그저, 평범한 수학여행의 하루를

낯설게 바라본 교사일 뿐이다.


그 하루가, 아이들에게 오래 기억될 작은 물결이 되기를.
그 물결이, 누군가의 교실에서 다시 잔잔히 번지기를.

그런 마음으로 이 기록을 남긴다.


다음이 궁금하시다면

이 글은 시리즈로 이어집니다.
2편에서는 ‘아이들과의 조편성, 주제 설정, 안전 기준 설계’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담깁니다.

https://brunch.co.kr/@2f9a9038be064ff/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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