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를 공유하는 사이

피로를 나누는 순간, 관계는 가까워진다

by 아빠쌤

금요일 오전 3교시.
일주일의 피로가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시간이다.

고3 교실의 공기는 묘하게 느슨하다.
아이들의 눈은 또렷하지 않고, 몸은 의자에 반쯤 기대 있다.
열심히 버티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더 잘 보이는 순간이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피곤하지?”

잠깐의 정적 뒤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좀 피곤해요…”
“어제 늦게까지 해서요…”

그 말들이 그냥 흘려지지 않았다.
나 역시 2, 3, 4교시 연강이었다.
비슷한 피로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말했다.
“조금 쉴까?”

순간 교실의 공기가 바뀐다.
아이들의 눈이 확 살아난다.
그 반응이 너무 솔직해서 웃음이 났다.

완전히 쉬게 할 수는 없지만,

조금은 숨을 고를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오늘은 조금 쉽게 가자.
10분 문제 풀고, 10분 설명하고,
나머지 20분은 복습하거나… 피곤하면 좀 쉬어도 돼.”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게 가능한가 싶은 표정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수면 부족은 공부를 싫어하게 만든다.
<회복탄력성>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다.
노력보다 먼저 무너지는 건,
의지가 아니라 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때 뒤쪽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참. 스. 승.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가볍게 받아쳤다.

“참스승 되기 쉽네?”

짧은 웃음이 지나가고
아이들은 다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까보다 눈빛이 더 또렷하다.

억지로 붙잡고 있던 집중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집중에 가까운 느낌.

설명은 10분을 넘겨 15분이 되었지만
아이들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미안해, 시간 좀 오버됐네.”

괜찮다는 반응.
그 말속에는 알고 있다는 말이 담겨 있다.

오늘 수업이 평소보다
10분 정도만 일찍 끝났다는 것.

그리고 그 10분 동안
잠을 자는 아이보다
자기 공부를 하는 아이가 더 많을 거라는 것까지.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고 있는 것들이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달려들듯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바꾸겠다는 마음으로
억지로 끌어당기지도 않는다.


그저
같은 시간 안에 머물며,
비슷한 피로를 느끼고,
비슷한 고민을 지나가는 사람으로
곁에 있으려 한다.


가르친다기보다
함께 버티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크고 분명한 문장이 아니라
조용히 스며드는 쪽을 닮아간다.


수업도, 관계도, 시간도.

눈에 띄게 변하는 것보다
조금씩 스며드는 것이 더 오래 남는다.


아이들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것,
수험생활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는 건

결국
같은 생각과 감정의 결을
조금씩 나누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아이들 곁에
가랑비처럼 머문다.

작가의 이전글열심히 사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