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실이라 믿는 것들의 사실

by 폴리래티스


현대 철학의 거장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는 이해란 단지 해석이 아니라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투자 시장에서도 소름 끼치도록 유효하다. 우리는 시장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시장 그 자체가 아니라 나의 전이해가 투사된 하나의 사건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해는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사건이며, 이 사건은 언제나 개인이 이미 가지고 있는 전이해 위에서 발생한다.


타고난 기질과 신체, 사용하는 언어와 문화, 성장 과정에서 겪은 사건과 경험, 반복된 선택의 흔적까지 이 모든 것들이 한 사람의 전이해를 구성한다. 전이해는 쉽게 말해 한 사람이 가진 사전 지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현실을 눈으로 보았기에 그것이 사실이고 현실이라고 믿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내가 가진 전이해를 통해 해석된 현실일 뿐이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모든 사람이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는, 살아가며 겪은 경험이 다르듯 전이해 또한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존 로크는 인간의 마음이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빈 서판이라고 했고, 행동주의 심리학자 존 왓슨은 환경만 주어진다면 아기를 의사로도 도둑으로도 만들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복제 가능한 존재가 아니며, 같은 정보를 받아도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린다.


이 사실을 가장 쉽게 확인하는 방법은 주변에서 아이를 두 명 이상 키우는 부모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같은 부모, 같은 집에서 자란 형제자매조차도 결코 같은 전이해를 갖지 않기에 성향과 성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투자에서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같은 시장을 보고도 누군가는 공포를 느끼고, 누군가는 기회를 감지한다. 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 역시 전이해다.


소버린 마인드 투자록이 종목을 고르는 방법이나 매매 기법보다 전이해를 더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투자 성과는 지식의 총량에 비례하지 않는다. 같은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고, 그 해석을 어떻게 행동으로 옮기느냐에 따라 결과는 갈린다. 책을 여러 번 읽을수록 전혀 다른 내용처럼 다가오는 것처럼, 투자 경험이 쌓일수록 같은 시장도 투자자마다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전이해는 하나의 고정된 틀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갱신된다. 그리고 이 갱신의 속도가 곧 투자자의 진화 속도다. 뇌는 정보를 단독으로 저장하지 않고 맥락과 이야기로 엮어 기억하며, 기존 경험과 연결되지 않는 정보는 장기 기억으로 선택받지 못한다.


그래서 투자에서는 더 많은 데이터를 보는 것보다, 어떤 경험 위에서 그 데이터를 해석하느냐가 훨씬 중요해진다. 흔히 투자자의 이런 넓은 관점과 전이해를 인사이트라고 부른다. 정보는 이미 넘쳐난다. 그 속에는 신호와 소음이 뒤섞여 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전이해다.


전이해는 해석을 가능하게 해주는 강력한 도구이지만, 동시에 편향이라는 그림자를 동반한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이미 믿고 싶은 방향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시장의 신호를 해석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기존 신념에 맞게 끼워 맞추고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말 그대로 아는 만큼만 보이는 것이다.


소버린 마인드 투자에서 전이해의 개념을 강조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투자에서 성공의 조건은 불가능한 미래를 맞히는 능력이 아니라, 확장된 전이해를 바탕으로 세상의 맥락을 남들보다 한발 앞서 읽어내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자자는 종목을 고르기 전에 이 질문을 먼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전이해는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그리고 이 전이해는 나를 수익으로 이끌고 있는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편견의 늪으로 끌어들이고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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