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병렬 독서법과 생각의 연결

소버린 마인드 투자록

by 폴리래티스


초병렬 독서법이란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펼쳐 읽는 방식이다. 한 권을 끝까지 읽어야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전통적인 독서와는 거리가 멀다.


경제학 책을 읽다 뇌과학 책을 펼치고, 역사서를 넘기다 철학으로 주제를 옮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병렬성이다. 독서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분산시켜 사고가 어느 하나의 주제에 고정되는 것을 막는 방식이다. 겉보기에는 산만해 보일 수 있지만, 이 독서법의 목적은 애초에 집중이 아니라 관점의 확장에 있다.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일은 분명 가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전문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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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는 결이 다르다. 투자에서 중요한 능력은 특정 분야의 깊이 보다, 서로 다른 분야를 연결해 하나의 큰 그림으로 그려내는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기술과 자본, 정책과 인간의 심리, 그리고 시간. 이 모든 변수가 동시에 맞물려 움직이는 곳이 바로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소버린 마인드를 만드는 데 이런 독서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인간의 뇌가 이런 통합적 사고에 그다지 친화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우리의 뇌는 본능적으로 주목 필터를 통해 세상을 본다. 한 번 형성된 관점은 시간이 갈수록 단단해지고, 그 관점에 맞는 정보만 골라 받아들인다. 생존에는 유리할지 몰라도 투자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특정 산업이나 유행하는 테마에 몰입할수록, 다른 위험 신호들은 자연스럽게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이 시야의 필터를 넓히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초병렬 독서법을 그 도구로 삼았다.


물론 이 방식에는 분명한 위험도 있다. 명확한 문제의식 없이 여러 권의 책을 뒤적이기만 하면, 그저 산만함으로 끝나고 만다. 책 한 권을 소화할 체력이 없는 상태에서 시도한다면, 남는 것은 페이지를 넘긴 기억뿐일지도 모른다.


초병렬 독서법은 단순히 독서량을 늘리는 기술이 아니라, 일정 수준의 사고력을 전제로 하는 지적 훈련에 가깝다. 다만 어느 정도 독서 경험이 쌓이고, 읽은 내용을 자기 생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때부터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주제들이 어느 순간 한 지점에서 연결되기 시작한다.


경제학에서 본 인센티브 구조가 진화론의 적응 논리와 겹쳐 보이고, 뇌과학의 보상 회로가 자본 시장의 과열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 순간 독서는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하나의 사고로 바뀐다.


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특정 기업을 볼 때 재무제표의 숫자나 차트만 보지 않는다. 기술의 방향, 에너지의 구조, 정책의 의도, 인간의 욕망까지 여러 구조를 한꺼번에 떠올리게 된다.


이런 사고는 한 우물을 깊게 파서 얻기보다는, 서로 다른 분야를 서로 섞고, 연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특정 이론이나 관점에 얽매이지 않고, 남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으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사고 구조. 초병렬 독서법은 그 구조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아주 좋은 훈련 과정이다.


투자는 정답을 맞히는 게임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남는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질은 얼마나 깊이 아느냐보다, 얼마나 넓게 보고 연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오늘도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펼쳐 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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