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트 에코의 反)서재

by 폴리래티스


움베르트 에코는 자신의 서재를 찾는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눴다.
첫 번째는 “이 많은 책을 다 읽으셨어요?”라고 묻는 사람들이고, 두 번째는 그 공간이 읽은 책을 자랑하기 위한 전시장이 아니라, 탐구와 사유를 위한 장소임을 직감적으로 이해하는 이들이다.
에코가 더 반가워했을 부류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 서재란 읽은 책을 나열하는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읽지 않은 책이 더 많아야 제 기능을 다하는 공간이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는 이를 “움베르트 에코의 반(反)서재”라 부르며, 지식이란 지금 얼마나 알고 있느냐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배울 것이 남아 있는지를 자각하는 태도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서재에 읽지 않은 책이 많다는 사실은 결코 부끄러움이 아니다. 그것은 배우고자 하는 태도, 지식을 존경하는 마음, 앞으로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자세가 녹아 있는 증거다.
책장이란, 나 자신이 무엇을 알지 못하는지 기억하고, 아직 배우지 못한 것을 채워나가려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소버린 마인드 투자록 중에서-


움베르트 에코의 반서재라는 개념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책을 대하는 태도를 넘어 삶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자세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반서재는 지식을 얼마나 쌓았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 아니라,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를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는 장치다. 읽은 책보다 읽지 않은 책이 더 많다는 사실을 견디는 태도. 그것은 무능이 아니라 절제이며, 무지가 아니라 존중에 가깝다.


우리는 흔히 확신을 미덕처럼 여긴다. 많이 알고 있다는 인상, 막힘없이 설명할 수 있다는 능력, 질문보다 답을 먼저 내놓는 태도. 사회는 그런 사람들을 유능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에코의 서재는 정반대의 메시지를 던진다. 진짜 지적인 사람은, 아직 열어보지 않은 책들 앞에서 더 조심스러워진다는 것. 이해하지 못한 영역이 늘어날수록 말수가 줄어들고, 판단은 늦어진다는 것. 반서재는 그런 태도를 매일같이 훈련시키는 공간이다.


이 삶의 태도는 자연스럽게 시간과 선택의 문제로 이어진다. 반서재를 가진 사람은 서두르지 않는다. 모든 것을 지금 당장 알아야 할 필요도, 당장 결정해야 할 이유도 없다. 언젠가 필요해질 질문을 미리 곁에 두고, 그 질문이 스스로를 부를 때까지 기다린다.


이 기다림은 게으름이 아니라 준비다. 아직 펼치지 않은 책들은 미래의 나를 위한 자산이고, 아직 읽지 않은 페이지들은 내가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의 증거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삶을 단선적으로 보지 않는다. 지금의 관심사가 평생 지속되리라 가정하지 않고, 오늘의 확신이 내일의 오류가 될 수 있음을 전제로 산다. 그래서 특정 분야에 과도하게 자신을 고정시키지 않고, 언제든 이동할 수 있도록 주변에 여지를 남긴다. 반서재는 그 여지의 시각적 형태다.


투자는 이 삶의 태도가 가장 냉정하게 시험받는 영역 중 하나다. 시장은 확신을 가진 사람보다, 불확실성을 감당할 줄 아는 사람에게 관대하다. 모든 변수를 이해했다고 믿는 순간, 시장은 늘 예외를 들고 나타난다. 반면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판단을 미루고 규모를 조절하며,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행동 안에 반영한다.


반서재형 삶을 사는 사람은 투자에서도 같은 태도를 유지한다. 완벽한 정보나 결정적인 한 수를 찾기보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가설들을 곁에 두고 관찰한다. 지금은 사지 않지만, 언젠가 이해가 깊어질 수 있는 산업. 당장은 낯설지만, 시간이 흐르면 필요해질지도 모를 개념들. 이런 것들을 서가에 올려두듯, 머릿속에 보관한다.


중요한 것은 당장 행동하지 않는 선택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반서재는 미완의 상태를 허용하는 구조다. 삶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명확히 규정하고 살아가려는 사람보다, 일부러 정의를 유보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 변화에 더 강하다. 그들은 이미 모름을 전제로 세계를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버린 마인드란, 스스로를 완성된 존재로 여기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나는 아직 모른다. 나는 더 배울 수 있다. 나는 바뀔 수 있다. 나의 서재는 이 문장을 매일같이 눈으로 확인하는 장소다.


결국 반서재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얼마나 많이 쌓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열어둘 수 있는가? 얼마나 개방적이고 유연한 생각을 유지할 수 있는가? 그런 태도가 삶을 단단하게 만들고, 투자에서는 생존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직 읽지 않은 책이 가득한 서재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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