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적 권위주의의 시대

by 폴리래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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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운 정보의 바다에 살고 있다. 과거처럼 국가가 검열을 하거나 절대적인 종교적 교리가 개인의 사유를 통제하지도 않는다.


누구나 손가락 하나로 세상의 모든 지식에 접속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는 점점 더 극심한 불통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각자의 생각은 더 단단한 벽 안에 갇히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타자는 대화의 상대가 아닌 처단해야 할 적이 된다. 왕도, 독재자도 없는 시대에 우리는 스스로 편견의 감옥에 발을 들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현대 사회의 보이지 않는 통제 기반인 수평적 권위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인간은 세상을 바라볼 때 아무런 전제 없이 백지 상태로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다머가 말한 ‘전이해’라는 틀을 통해 세상을 해석한다.


이는 혼란스러운 정보 속에서 의미 있는 것을 골라내는 효율적인 인지 도구이지만, 이 틀이 경직되는 순간 비극이 시작된다. 사회심리학자 고든 올포트가 지적했듯, 편견은 단순한 지식의 오류가 아니라 정서적인 저항이다.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증거가 나타났을 때 인간은 논리적으로 수정하기보다 분노를 느끼며 거부한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편견은 단순한 고집을 넘어 개인의 정체성과 결합한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이나 내가 투자한 자산에 대한 비판을 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치환해버리는 것이다. 이때부터 데이터는 객관적인 지표가 아니라 나의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한 무기가 된다.


이러한 현상이 심화된 배경에는 수직적 권위의 붕괴가 있다. 과거에는 국가, 종교, 혹은 가부장적 질서가 정답을 내려주었으나, 이제 그 자리는 공백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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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이 간파했듯, 인간은 주어진 자유 앞에서 해방감을 느끼는 동시에 감당할 수 없는 불안에 직면한다. 무엇이 옳은지 판단해줄 절대적 기준이 사라진 세상에서 인간은 고립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새로운 권위를 찾아 헤맨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수평적 권위다. 우리는 이제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이 아니라, 내 곁에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여주는 유튜버, 내 정치적 분노를 대변하는 인플루언서, 내 투자 판단을 맹목적으로 지지해주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발적으로 복종한다. 이것은 강요된 권위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권위이기에 훨씬 더 강력하고 교묘한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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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심리적 기제에 불을 붙이는 것은 기술적 환경, 즉 알고리즘이다. 인간은 본래 다수의 의견을 따르며 안도감을 느끼는 밴드왜건 효과에 취약하다.


소셜 미디어는 이 본능을 수익화의 도구로 삼는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기뻐할 정보, 우리 편의 정당성을 확인해줄 정보만을 선별하여 끊임없이 공급한다.


1980년대 미국의 뉴트 깅그리치가 타협을 거부하고 적대적 공세로 지지층을 결집했던 정치는 이제 알고리즘을 통해 일상화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인터넷은 다양한 목소리가 흐르는 열린 광장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반대 의견이 철저히 차단된 채 확증편향의 메아리만 가득한 수많은 닫힌 방들의 집합일 뿐이다.


그렇다면 정보의 파도가 몰아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가. 특히 시장의 냉혹한 숫자를 다루는 투자자에게 이 문제는 생존과 직결된다. 대중의 감정이 모이는 커뮤니티와 SNS는 정보의 보고인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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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닫힌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의 전이해를 끊임없이 의심해야한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이 객관적 사실인지, 아니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믿고 싶은 환상인지를 냉정하게 분리해야 한다. 쏟아지는 도그마에 휩쓸리지 않고 그 이면의 의도를 꿰뚫어 보는 비판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결국 진정한 자유란 단순히 선택지가 많은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자신의 편견이 틀릴 수도 있다는 반증 가능성을 열어두고, 낯선 관점과 대면할 수 있는 용기를 갖추는 것만이 수평적 권위주의라는 함정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타인의 목소리가 소음이 아닌 성찰의 계기로 다가올 때, 우리는 비로소 알고리즘이 설계한 닫힌 사회를 넘어 진정으로 열린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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