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례식을 상상해 봄
나는 이틀 전, 가을 햇살이 따사롭게 감기는 거실 한 켠의 흔들의자에 기대어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고 있었다. 세 번째 읽는 거였다. 중3 때 처음, 환갑 때 한번 더 읽었었다. 눈이 침침해지면서 졸음이 몰려와 잠시 머리를 뒤로 기댄 채 눈을 감았는데, 그 길로 마지막 숨을 내쉬게 되었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조금 갑작스러웠다. 하지만 아쉬움도 미련도 없다. 더구나 나의 마지막 길을 고통스러운 통증이 아니라 내 생애 최고의 소설로 꼽았던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으며 떠났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나의 장례식은 마을공유공간 [재미난] 강당에서 1일장으로 진행된다. 이제 내 육신은 자그마한 구슬이 되어 마을 사람들과 나의 오랜 친구들과 가족들과 함께 있다. 그리고 내 영혼은 아직 그 곁을 맴돌며 나의 구슬과 구슬이 된 나를 보러 오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나를 화장해서 구슬로 만드는 과정은 남편과 딸과 사위 그리고 그들의 4남매만이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 후 그들은 내가 생전 부지런히 다니던 정토회의 법당으로 가서 천도재를 지낸 후 오늘 아침 이곳으로 데려 왔다.
23년 전 뜻있는 마을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옛 재미난학교 터와 그 근처 건물을 매입해서 세운 마을공유공간 [재미난]은 1층은 카페와 공유식당 그리고 리사이클링 관련 사회적 기업이 입점해 있고, 2~4층은 어린이, 청소년, 노인 전문으로 특화된 도서관 들어섰다. 5층은 세미나실과 강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공간은 대여도 하고 마을행사가 있으면 사용한다. 옥상에 올라가면 옥상텃밭이 있고, 또 옥상 난간에는 붉은 장미를 심어 봄부터 여름까지 멋진 장미울타리를 볼 수 있다. 예쁜 벤치와 편안한 의자를 배치해두고 타푸를 쳐서 사람들이 야외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게 해 놓았다. 내가 집처럼 매일 드나들었던 이 공간에서 나의 장례식을 하게 된 것도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10년 전 재산을 모두 정리해 내가 활동하던 단체들에 기부를 했고, 그동안은 매달 나오는 연금으로 살아왔다. 나이가 들면서 사는 게 단순해지다 보니 그 돈도 손주 녀석들 용돈 주는 것 말고는 통장에 그대로 쌓이게 되었다. 나는 그 돈을 모두 내 장례식 식사 비용으로 쓸 것을 딸에게 미리 얘기해 두었다. 나를 그리워하며 추모하러 온 사람들에게 맛있는 한 끼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다. 딸은 최고급 출장 뷔페로 계약을 했다. 오늘 이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도 안내를 해서 한 끼 식사를 하고 갈 수 있도록 했다. 과거에 나는 없이 살면서도 없는 티를 내기 싫어서 약간의 허세를 부리며 살았었다. 어쩌면 이것은 나의 마지막 허세라 할 수 있겠다. 부의금도 받지 말라달라고 부탁해 뒀다. 그저 와서 나를 추억하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맛있게 식사하다가 가면 된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바라보며 그들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아 갈 것이다.
강당의 스크린에는 나의 어릴 적 사진부터 최근 모습까지, 그리고 나를 인터뷰한 내용도 담은 몇 해 전 딸이 나의 구순 기념으로 제작한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나는 딸아이가 중학생이 되던 해인 쉰다섯부터 마을의 몇몇 엄마들과 세계문학전집 읽기 모임을 시작했었다. 그 시작 모임 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600권이 넘는데 이 책들을 한 달에 한 권씩만 읽어도 백 살이 훌쩍 넘는다고, 그리고 그사이 새로 출판되는 것은 어쩌냐면서 책 읽으려다 죽지도 못하겠다며 깔깔댔던 적이 있었더랬다. 이 모임이 시간이 갈수록 회원도 많아지고, 몇 십 년째 이어지면서 [고전 읽는 할머니들]이라는 다큐가 만들어져서 티브이에 방영이 된 적이 있었다. 이 영상도 나오고 있다.
나의 구슬과 영정사진은 백장미로 장식이 되어 있다. 은은한 핑크 빛깔이 감도는 장미가 화려하고 아름답다. 평생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꽃만은 탐스럽게 피어난 장미를 좋아했다. 그래서 마지막엔 장미에 둘러싸여 사람들에게 인사받고 싶었다. 그리고 사람들도 국화가 아닌 장미 한 송이 내 영정 앞에 놓아두길 바란다.
또 한 켠에는 내가 남긴 몇 가지 쓸만한 물건들을 전시해 놓고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나는 환갑 이후 거의 물건을 사지 않고 지냈다. 꼭 사야 될 것이 있다면 가격보다는 물건의 질을 보고 비싸더라도 좋은 걸로 샀다. 내게 쓸모가 없어지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었으면 해서였다. 가난했던 젊은 시절엔 싼 것을 사서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버려지게 하여 나의 아름다운 지구별을 더럽히는데 일조를 했었다. 내 형편이 나아지면서부터 그러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딸아이가 벌써 쉰한 살이다. 마흔둘에 아이를 낳으면서 적어도 저 아이가 스물이 될 때까지는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는데, 하루하루 살아내다 보니 갓난아기가 쉰을 넘길 때까지 살았다. 넘치게 살았다. 이제 내가 떠나도 이 아이는 그리 슬프지 않을 것이다. 남은 자신의 삶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행복하게 잘 살아낼 것이다. 나보다 한 살이 많은 남편은 아직도 정정하지만 곧 뒤따라 오겠지.
밤 12시가 가까워 오고 있다. 오늘 나의 장례식이 끝나간다. 사람들은 아직도 북적이고 있다. 하지만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떠나야 한다.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이 귓가에서 맴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모두들 안녕.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마웠어요. 초록빛 지구별 잊지 않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