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의 경험
갈아입을 옷 몇 가지를 챙겨 넣고 짐을 쌓다. 8월 한여름이었으므로 옷가지들이 가벼웠다. 엄마에게는 한 일주일 정도 있다 올 거라며 집을 나섰다.
나는 그 길로 대학시절 친구 J가 있는 문경으로 가는 여정에 올랐다. J가 거기 있었기에 문경으로 가는 발걸음이 훨씬 가벼웠다. 구포역에서 열차를 타고 김천까지. 김천역에 내려서는 점촌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그리고 점촌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다시 문경 가은읍까지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가은읍에서는 걸어서 한 시간 남짓 되는 거리다. 걸어서 갔는지, 택시를 탔는지, 버스를 탔는지, 아님 누군가의 차를 얻어 탔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어떻게 갔을까?
J는 4학년 2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깨달음의 장’이라는 수련프로그램에 다녀온 후, 마음공부를 하고 싶다는 한마디를 친구들에게 남기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우리들은 모두 졸업 후를 준비하기에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J가 사이비 종교단체에 빠졌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여 하루 날을 잡아 친구 H와 함께 J가 기거하고 있다는 문경의 정토수련원엘 찾아가 보았다.
약간 여윈 모습이었지만 J는 건강한 모습으로 잘 지내고 있었다. 뭘 하며 지내냐니, 수련원 청소하고, 공양간 일도 하고, 농사도 짓고, 새벽에는 절과 명상을 한다고 했다. 마음이 편안하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그 수련원을 세운 법륜스님 이야기를 해주었다. 혜안이 있으신 훌륭한 스님이라고. 당시 종교에 부정적이었던 나는 이 이상한 단체를 이끄는 교주이구나 생각하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우리는 어쨌든 J가 좀 특이한 곳이기는 하지만 그곳에서 건강하게 지내고 있음을 확인하고 그 수련원을 떠났다.
J가 문경으로 떠났던 겨울이 지나고 그 다음 해 봄, 나는 자주 다니던 학교 앞 서점에서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라는 책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책은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을 상생과 공존의 관점에서 너를 죽여 내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네가 있음으로 내가 존재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쫓고 쫓기는 경쟁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내게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한 울림을 주었다. 책의 저자가 법륜스님. 처음엔 J를 문경 촌구석으로 이끈 그 사람과 동일 인물이 맞는지 긴가민가하여 J에게 전화를 하여 확인까지 했다. 친구는 반가워하며 다른 좋은 책들도 많이 있으니 꼭 읽어보라는 말까지 전했다.
내 나이 스물여섯. 이렇게 법륜스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나는 스님께서 집필하신 금강경, 반야심경, 부처님의 일생 등 여러 가지 책들을 읽으면서 불교에 점점 심취해 갔다. 그리고 법륜스님이 이끄는 정토회라는 불교수행단체에 많은 호감과 궁금증이 생겼고, 불교공부를 더 깊이 해보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이런 내게 정토회의 법사님께서는 문경의 정토수련원에서 한 번 생활해 보라고 권해주셨다.
내 친구 J가 있는 바로 그곳. 나는 흔쾌히 가겠다고 했고, 당시 선배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임시로 잠시 하던 학원강사 일을 접고 바로 문경행에 올랐던 것이다. 아마도 우리 엄마와 가족들은 몇 달 전 내가 J를 보며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느꼈을 것이다. 그래도 딸을 믿고 찾으러 쫓아오지 않은 것이 지금 생각하면 새삼 고맙게 다가온다.
이렇게 해서 나의 백일출가가 시작되었다. 사흘 동안의 만배 정진은 이 수련원에 입재하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했다. 그때까지 나는 겨우 백팔배를 한 번 해보았을 뿐이었다. 하루에 삼천배를 넘게 해야지 사흘 안에 만 배를 할 수 있다. 해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어려운 수학문제를 푸는 것도 아니고, 정교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바닥에 엎드렸다 일어나는 것을 만 번만 하면 되는 것이기는 했다. 그리고 여기 사는 사람들 모두가 했다고 하니 두 다리 멀쩡한 내가 못할게 뭐가 있겠나 싶기는 했다.
8월 한여름 땀이 줄줄 흘러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다. 방석을 감싼 수건 위로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흘러내렸다. 허벅지 살이 땡땡하게 뭉쳐왔다. 엎드리면 다시 못 일어날 것 같은 생각 속에서 숙이고, 다시 일어나기를 만 번을 반복했다. 후회, 안타까움, 미련, 억울함, 무기력, 걱정, 소망, 감사함.... 오만가지 마음이 왔다가 사라져 갔다. 그 사흘 동안 나는 스물여섯 해 내 인생을, 그 속을 걸어온 ‘나’라는 존재를 꼭꼭 씹어 돌아보게 되었다.
수련원의 하루는 새벽 4시 30분에 시작된다. 새벽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씻고 새벽 예불을 드리고 수련원 곳곳 자기가 맡은 구역을 청소한다. 그리고 6시가 되면 발우공양을 했다. 아침 7시가 되면 일 나누기를 해서 각자가 할 일을 정했다. 깨달음의 장이나 나눔의 장 같은 수련이 진행될 때는 수련 도우미를 했고, 농사일이 바쁠 때는 농사일을 했다. 재래식 화장실의 똥을 퍼서 거름을 만드는 일도 했다. 이익을 추구하는 세상과 한 걸음 떨어져 오직 몸으로 일하고, 일어나는 지금 마음에 집중했다.
수련원에서 점심을 먹는 툇마루에서는 문경의 희양산이 그대로 보인다. 밥 한 술 뜨고 우뚝 솟아있는 바위산 한번 쳐다보고, 또 한술 뜨고 하다 보면 어느새 밥그룻이 비워져 있곤 했다. 이후 집으로 돌아와 직장을 구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문경수련원을 떠올리면 나는 그 툇마루에서 점심공양을 하던 기억이 가장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마도 엄마의 아늑했던 품을 떠난 이후 내 인생 가장 편안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한다.
사회 초년생 시절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지에 대한 고민이 나를 문경으로 이끌었고 백일이라는 시간을 거기서 보냈다. 그리고 그 백일의 시간은 이후 내 삶을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돌아보면 참 귀하고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다시 한번 새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