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은 돈을 싣고

-특별히 아끼는 물건

by 은효

얼마 전 새로 맞춘 다초점렌즈 안경을 끼고 거실의 테이블에 앉아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딸아이가 어깨너머로 얼굴을 쑤욱 들이밀며


“엄마~ 뭐 해? 아- 주식하는구나” 하며 지나간다.


주식이 뭔지도 잘 모르는 딸의 입에서 주식이라는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와서 나는 괜히 뒤통수가 뜨거워졌지만 다시 하던 일에 집중을 했다.



“자기야~ 나 일억만. 집 담보로 대출받아서 일억만 당겨주라.”



남편은 반대해 봐야 내가 포기하지 않을 거란걸 알고,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는 심정으로 대출을 받아서 내 통장에 일억을 꽂아주었다. 나 역시 이 돈을 다 날려도 내가 한강에 가지 않도록 아무 말하지 말라고 다짐을 받아두었다. 그게 2022년 2월이었다.


그 한 해 전 나는 친한 직장동료의 인도로 주식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꽤나 열심히 공부하는 스타일이었고, 자기가 공부한 것을 남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말 잘 듣는 학생이었다.(남편은 귀가 얇은 사람이라 칭한다.) 추천해 주는 책 대부분을 보았고 공유해 주는 유튜브 링크도 빠짐없이 보았다. 그에 더해 도서관에 가서 생전 가보지 않았던 재테크 분야 쪽으로 가서 주식, 채권, 부동산, 연금, 금, 달러 등 제목과 목차를 보고 마음에 드는 것들은 죄다 빌려와서 보기 시작했다.


주식계좌를 만들었고, 딸아이의 용돈으로 모아 둔 쌈짓돈을 털어 안정적이고 배당수익도 얻을 수 있다는 삼성전자와 은행주를 사보았다. 그리고 사수의 추천으로 공모주에도 도전해 보았다. 공모주를 하려면 공모 주관사별로 증권 계좌가 있어야 했으므로 어느새 내 폰에는 10여 개의 증권사 앱이 좌르르 깔리게 되었다. 공모주 일정을 휴대폰 캘린더에 빼곡하게 기록하고 날짜 맞추어 신청을 하고, 또 상장일에 매도를 하면서 적게는 커피값에서 많게는 치킨값 정도의 돈을 버는 경험을 해보았다. 그리고 유튜브를 보면서 고수라는 사람들이 추천해 주는 종목들을 몇 주씩 담아보았다. 이 모든 일들에 휴대폰은 필요불가결한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작가 tv라는 유튜브 방송을 보다가 -레버리지가 아니면 평범한 인생을 바꿀 수 없다-라는 꽤나 자극적인 부제가 달려 있는, 라오어의 [미국주식 무한매수법]이라는 책 소개를 듣게 되었다. 귀가 솔깃하여 바로 주문을 했고, 두 번 연속 읽었다. 책은 미국에 상장된 3배 레버리지 ETF의 변동성을 이용해서 매일 일정 금액을 분할매수하고, 또 일정 주가에 도달하면 분할매도하여 위험성은 낮추면서도 상당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퀀트투자법(데이터와 수학적 모델을 기반으로 투자 판단을 자동화하는 방법, 즉 숫자와 공식에 따라 기계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을 소개하고 있었다.


주식 책을 보면 볼수록 미궁으로 빠져들던 그때, 나는 이 책을 보면서 ‘그래, 이거야’라는 깨우침 비슷한 것이 있었다. 인생을 바꾸지는 못 할지라도, 우왕좌왕하지 않고 원칙 있는 투자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후 나는 배당주 중심의 안정적인 마편투(마음 편한 투자)를 추구하는 나의 사수로부터 독립하여, 레버리지 ETF 중심의 공격적인 마편투를 하는 라오어의 문하생이 되었다. 내 투자 인생이 새롭게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남편과 나는 있는 돈을 탈탈 털어서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사는데 다 써버려 여윳돈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다행히 대출도 없었다. 대출 없이 집을 살 때 몇몇 지인들은 대출을 받아서 어디라도 투자를 하든지, 아니면 좀 더 좋은 집을 사든지 하는 것이 좋지 않냐는 조언을 했었다. 그러면 금융문맹이었던 우리는 대출이 없으니 마음이 아주 편안하고 좋다고 대거리를 했었더랬다. 돌아보니 그 시절이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나의 성화에 못 이긴 남편의 묻지마 투자 덕분에 나는 3년 전부터 빚을 내서 레버리지 ETF에 투자를 하는 레버리지에 레버리지를 더한, 사람들이 보기에 아주 위험한 투자를 시작했다. 실제로 반토막이 나는 경험도 해보았지만, 정해진 원칙을 지키며 꾸준히 하다 보니 이제 대출금은 거의 다 갚았다.


작은 눈뭉치는 열심히 굴려도 잘 커지지 않는 것처럼 아직은 내 돈도 작은 눈뭉치에 불과하다. 하지만 계속 굴리다 보면 어느새 커져있는 눈덩이를 보게 되듯이 내 돈도 언젠가는 커다란 눈덩이가 되는 날이 꼭 올 것이라 믿는다. 그날을 위해 나는 매일 저녁, 노안이 와서 잘 보이지도 않는 눈에 돋보기를 끼고서 휴대폰의 작은 액정을 들여다보며 매수가, 매도가를 찍고, 예약매수, 예약매도 버튼을 조심조심 누르고 있다.


많은 돈이 무조건 큰 행복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현듯 찾아오는 불행을 막는 데는 분명히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돈이 있다면 누구보다도 잘 쓸 자신이 있다. 그동안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리고 지렛대로 이용할 만큼의 돈도 없어서, 그런 쪽에는 더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손안에 작은 스마트폰이 길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나는 쉰이 넘은 나이에 뒤늦게 투자의 길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예전에 출연자와 연락이 끊긴 친구, 은사, 은인 등을 제작진이 수소문하여 찾아주는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을 자주 보았었다. 요즘 나는 내 휴대폰이 이 프로그램 속 TV처럼 느껴진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갈 곳을 몰라하는 돈들을 내게로 잘 인도해 주는 소중한 통로로 말이다.


가끔씩 눈을 감고 휴대폰을 통하여 돈들이 나를 찾아오는 상상을 해본다. 휴대폰 속 내 계좌에 돈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나는 이 돈들을 계좌에 편안하게 자리 잡게 해 줄 것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덩치를 키워서 기쁜 마음으로 나가고 싶어 할 때, 더 좋은 곳을 찾아서 있어야 할 곳으로 아낌없이 내보내 줄 것이다.


이 즐거운 상상의 끝에는 예전엔 아무 데나 던져두고 살았던, 그러나 요즘엔 그 무엇보다도 귀애하는 나의 소중한 휴대폰이 손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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