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들어도 좋은 음악
샤워 물줄기 소리와 함께 승원이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 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네모난 문을 열고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네모난 스마트폰을 본 뒤~
딸은 샤워를 할 때 항상 노래를 부르면서 한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동안은 ‘인수봉 정기 솟는~’으로 시작하는 교가를 열심히 불러대는 바람에 나도 딸의 학교 교가를 다 외워버렸다. 얼마 전에는 진도아리랑 부르기 수행평가가 있다며 아침저녁으로 부르고 다녀서 국악한마당을 켜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당연히 유명 아이돌들의 노래도 많이 부른다. 최근에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나오는 골든을 열심히 따라 불러서 덕분에 나도 이 곡에 귀가 트이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시내의 거리를 걸으면 들여오는 최신 유행곡들을 딸 덕분에 알게 된 것들이 꽤 많다.
‘네모의 꿈’은 학교 축제에서 반 친구들 전부가 함께 합창곡으로 부르기로 해서 연습 중이라고 했다. 그래 ‘네가 노래를 부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라는 생각이 스치며 입가에 웃음이 묻어났다. 나는 승원이가 노래 부르는 소리를 듣는 게 참 좋다. 조금 전까지 했던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그냥 편안해진다. 아이의 즐거움과 유쾌함, 가벼움은 곧 나의 것이 되어버리므로.
샤워를 하고 나와서는 젖은 머릿결을 말리지도 않은 채 또 현관의 중문 앞으로 가서 유리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춤을 춘다. 4학년 쯤이었거다. 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댄스 동영상 거울 모드를 보며 한 동작씩 익혀나갈 때는 어설프기만 하더니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니 지금은 제법 춘다. 아이돌 댄스에 문외한인 내 눈에는 유명 아이돌과 다를 바 없이 추는 것처럼 보인다.
초등학교 때는 ‘재미난 걸스’라는 동아리 만들어서 아이돌 댄스를 동생들과 함께 연습하고, 12월이면 하는 학교의 한 해 마무리잔치에서 발표를 하기도 했다. 작은 여자 아이들이 무대에서 하는 몸짓은 그게 어떤 동작이든 다 보는 어른들의 눈을 녹였고, 고스란히 박수 소리와 응원의 함성으로 이어졌다. 그 무리에 승원이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너무도 뿌듯했다. 마치 내가 거기 서 있는 것처럼.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뒤 학교 댄스 동아리에서 회원을 뽑는다면서 자신도 지원을 할 것이라고 했다. 결과는 아쉽게도 탈락. 소수정예로 이루어진 그 동아리는 뽑는 인원도 적었고, 자신보다 월등히 잘 추는 2학년 선배 두 명만이 뽑혀서 자신의 탈락에는 전혀 마음의 동요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아쉬웠는지 같은 반 여자친구들 4명과 함께 댄스동아리를 새로 만들었다. 이후 왕자와 춤추던 신데렐라가 12시만 되면 후다닥 사라지듯이, 승원이도 일요일 2시만 되면 어김없이 댄스 연습을 하러 동네에 있는 청소년센터로 사라졌다. 오는 가을에 수원인가 인천인가에서 하는 무슨 오디션에 참가할 거라면서.
오디션 도전은 메일로 보낸 춤추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에서 바로 탈락했다. 예선도 못 가보고.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바인지 그다지 아쉬워하지도 않는것 같았다. 그래도 연습은 계속하러 가길래 이제는 무슨 춤을 추냐고 물었다.
“9월 말에 강북구 청소년 문화제를 하는데, 거기에 나갈 거야.”
당일 아침, 8시까지 가야 한다며 토요일인데도 7시부터 일어나서는 아침도 제대로 먹지 않고 부리니케 나가버렸다. 보러 가도 되냐니까 오지 말란다. 다음에 더 잘하면 그때 오라며.
나는 학창 시절 음미체 그러니까 예체능은 모두 '꽝'이었다. 음악은 음치, 박치, 몸치에 듣는 귀도 없었다. 체육은 공만 보면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드는 운동신경 제로에 유연성도 없고, 힘도 없었다. 미술도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보면 되겠다. 실기 시험에서 날린 점수를 필기시험에서 메꾸며 아슬아슬 ‘양가집 규수’를 벗어나 아름다울 ‘미’를 겨우 유지했다. 하지만 예체능에 필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아이를 낳고 딸에게 이런 유전자를 물려준 것이 항상 미안했다. 특히나 노래를 몇 번 듣고는 그대로 따라서 불러버리는 낭랑한 목소리를 가진 대여섯 살 먹은 꼬맹이들을 볼 때는 더더욱 그랬다. 사실 딸은 노래도 춤도 잘하지는 못한다. 노래도 여러 번 듣고 따라서 부른 후에야 음을 겨우 잡고, 고음이 안돼서 삑사리를 낼 때도 허다하다. 하지만 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못하는 것에 스트레스받지 않는다. 그냥 재밌고 좋아서 계속한다.
나는 이런 승원이의 모습을 하루 종일 지켜보고 있어도 지겹지 않고 좋을 것 같다.(실제로 그러면 당황하려나...... 하하하) 강북구 청소년 문화제에서 승원이 팀은 동상을 받았다. 다섯 팀 참가했는데, 차례로 대상, 금상, 은상, 동상, 장려상 이렇게 모두가 상을 받았다고 했다.